할머니는 아빠를 보낸 게 슬퍼? 섭섭해? 당연하겠지. 나는 윤오를 놔두고 온 게 자꾸 생각나. 내가 윤오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화가 나. 함께 있을 때만큼은 행복하길 바랐는데 오히려 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갔나 봐. 나도 윤오한테 물들었어. 검게 물들어 버렸어. 윤오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걸까? 우린 서로에게 슬픔만 주고 끝낸 걸까? 아빠는 어땠어, 할머니. 아빠는 할머니한테 슬픔이야? 나는 아빠가 자랑스러워. 아빠가 죽은 게 슬퍼. 그래도 사랑 많이 받아서 섭섭하진 않아. 살아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할머니도 어쩔 수 없던 일이었잖아. 누구도 버리고 떠나가지 않았어. 그냥 그 일이 일어난 거야. 나는 윤오를 버리지 않았어. 포기할 수 없어서 계속 붙들고 있던 나를 위해 드디어 내 갈 길을 간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서 슬프긴 해. 윤오가 밉기도 해. 그런데 내 잘못일까? 내가 이렇게까지 아픈 건 윤오 잘못일까? 알 수 없어. 앞으로도 알지 못할 거야. 처음 느껴보는 현상들을 맞이하는 데 큰 힘이 들어서 생각할 수조차 없어. 우리 이제 그만 놔주자. 적어도 서로를 보고 오늘을 살아내자. 사랑이란 힘으로 안아보자. 힘들긴 해도 살아남아보자.
독백인지 대화인지 모를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침의 우리는 부기가 빠지기도 전에 더 부어버린 마음으로 서로를 안았다. 마당에 펼쳐져 있는 타일 조각들이 이제는 사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잡고 놓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안겨서 고민했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 잠겨버린 날들을 음미했다. 나까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날들을 다시 새로이 봤다. 나는 여기에 있다. 윤오와의 시간들에 존재하는 나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지는 바로 지금, 현재의 나에게 달려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당장 실재하는 나뿐이다.
할머니의 품에서 나와 늘어져 있는 타일들로 갔다. 타일에 쏠 실리콘을 정리했다.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아 널브러진 흔적에 손을 댔다. 타일들을 하나둘씩 거두기 시작했다. 가져왔던 포대에 다시 조심히 넣었다. 이걸 집까지 가지고 갈지 생각하는 건 그만뒀다. 작게 난 흠집에 손이 베기도 했다. 새로운 이끼가 형성되는 걸 보면서 그대로 방치했다. 그저 타일을 담는 일에만 집중했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지는 마당에서 열심히 정리했다. 나의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졌다. 할머니는 연석에서 평상으로 이동해 가만히 앉아 내가 하는 일을 지켜봤다. 우리는 그리움을 거두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서 하루 더 묵고 집으로 올라왔다. 다시 가져온 타일은 둘 곳이 없어 세탁실 옆에 쌓아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면 타일 하나씩 들고 잘게 잘라 파편을 만들었다. 새로운 포대에 파편을 모았다. 포대가 반정도 찰 때쯤 타일 부수기는 내 머릿속에서 잊혀갔다. 그럼에도 가끔 옷장을 열면 타일 파편이 나오곤 했다. 주방 식기를 꺼내기 위해 찬장을 열면 타일 파편이 거기에 있었다. 옷을 입고 밥을 하면서도 그 파편을 그대로 뒀다. 그랬더니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탁실 안에 뒀던 타일들과 파편들은 불연성 쓰레기 포대에 담아 분리수거를 했다. 세탁실 바닥에도 치워지지 못한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역시 그대로 뒀다. 그랬더니 파편은 흐르는 물에 씻겨 없어졌다.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종종 보이는 파편들이 더 이상 손을 찌르지 않는다. 나의 그리움도 그렇게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