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상자를 들고 돌아다닐 자신이 없어 차를 빌려 가는 중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교류가 많진 않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자주 찾아뵙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기 마련이다. 아빠가 죽을 때까지는 몰랐던 공식이었다. 장례식 당일까지도 괜찮기만 한 줄 알았던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발현됐던 날, 그래서 결국 모든 걸 토해냈던 날, 안아준 건 할머니였다. 아빠의 영정 사진 앞에서 혼란스러운 내 감정을 엄마에게 전염시켰더니 사랑하는 나의 엄마는 소화시키지 못했다. 방석에 누워 힘없이 울고 계시던 할머니가 다가와 갱아지, 우리 갱아지, 울지 말거라…… 울지 말어…… 하며 안아줄 뿐이었다. 오래 묵은 할머니의 냄새가 우리 둘 사이에 끊겨버린 핏줄을 겨우 이어주는 것 같았다. 야속하게도 긴 명줄을 잡고 버티게 해주는 게 나의 도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종종 할머니를 찾아가 같이 밥을 먹었고, 마트에서 필요한 걸 사다 줬고, 마당을 가꿨다.
윤오를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할머니를 잘 찾아뵙지는 못했다. 빈도는 점점 낮아졌고, 할머니와는 전화통화로 간간이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특히 윤오를 병원에 두고, 타일을 찾으러 다닌 몇 달 동안은 할머니와 전화 통화도 거의 못했다. 할머니는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으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기다려줬다. 이번에 내려가면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자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기뻐하는 기색이 선명했다. 할 일이 있어 오래 묵을 예정이라 하니 더 좋아했다. 윤오와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할머니집에 가겠다는 결심은 좋은 선택이었다.
시골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의 얼굴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뜯어보며 그리움을 지웠다.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는지,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내려온 건지 물어보지 않았다.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느껴져 손길을 그대로 받았다. 할머니와 나 사이엔 끈이 하나 있다. 서로의 상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아주 가는 실 하나. 잊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는 아주 소중한 마음 하나. 몇 달 사이에 조금 더 늙어버린 할머니의 얼굴을 나도 뜯어보며 그를 상기했다. 아버지를 불러왔다. 윤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기에 기뻤고, 섭섭했다.
집에서부터 가져온 타일을 하나씩 꺼냈다. 담아왔던 대로 다시 배열하니 집에서의 모습과 비슷했다. 할머니 집의 마당 저편 창고에 가까운 자리에 놓아진 타일은 나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후의 일은 계획하지 않았으면서 얼른 끝내기만을 나도 기다리고 있었다. 타일을 배치하고 실리콘으로 사이를 이으니 하루가 다 져버렸다. 할머니는 말없이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밥 먹으란 소리 대신 중간중간 포슬포슬하게 쪄낸 감자나 물방울이 맺혀있는 과일을 갖다 줬다. 옆에 있는 밭에서 상추를 뜯거나 잡초를 뽑으면서 나와 함께했다. 허리가 아픈지 끙끙대면서도 집에 들어가는 일이 잘 없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갔다. 할머니가 가져다준 간식거리를 먹으며 버텼다. 배고프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할머니도 나를 따라 식사를 하지 않았다. 걱정은 되지 않았다. 버틸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각자의 그리움을 그려나갔다.
평소에 쓰지는 않지만 늘 청소는 깔끔하게 되어 있는 방 안에 누워 널브러진 타일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갖고 오면서 몇 개는 깨져버렸다. 초록 빛깔의 바깥과는 달리 하얀 속내가 부드러워 보였다. 저 흰빛에는 베여도 안 아플 것 같아. 그러나 어떤 고통은 아픔으로 지워버려야 할 때가 있었다. 시골의 밤은 고요했고 가끔 창문을 통해 부서져 들어오는 불빛이 희미한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타일을 찾으러 다니면서 잊고 있었던 윤오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깨진 단면 끝은 날카로웠고 정교하지 않은 뾰족함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 끝에는 나의 색으로 물들여야 할 것 같아. 마찬가지로 어떤 고통은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기인했다. 이미 끌려버린 시선은 도무지 거둘 수 없었고 자꾸만 예상치 못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조각들을 치우지 않으면 지금, 혹은 자는 중에,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안 좋은 일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몽유병도 없으면서 의식이 없는 밤 사이에 저 타일로 나를 헤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걸 원했지만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일을 치우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원했고, 원하지 않았으므로. 윤오의 옆에 있으면서 견디기 힘들었던 이중적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침에 나를 발견하게 될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 그러니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면서 – 꿈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