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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22. 2021

불호의 일치

같아야 하는 건

 한국어를 배우는 곳에 있으면 아이돌 가수들의 동향을 조금 일찍 알 수 있다. 요즘 어떤 아이돌 그룹이 핫한지 곧 어떤 그룹이 뜨게 될지 외국인 학생들 입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으로 알게 된다. K-pop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가수가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학생도 많아졌다. 사실 나는 아이돌을 잘 모른다. 그래도 학생들이 흥미로워하는 소재이니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지 꼭 물어본다. 보통 한 반에 열 명에서 열 다섯 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그중에 같은 가수의 팬들도 있다. 좋아하는 가수 이름이 나오면 학생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반갑고 아이돌 오빠들 이야기에 신이 난다. 엑소 팬이라서, 세븐틴 팬이라서, BTS 팬이라서 학생들은 금방 친해진다.


 클럽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다. 진정한 클러버는 요일을 가리지 않는 법. 평일에도 가고 주말에도 간다. 어려서 체력이 받쳐 주니 그것도 가능하겠지만 클럽에서 놀다가 잠 한숨 안 자고 아침에 그대로 학교에 오는 학생도 있다. 클럽에 다니는데 학교에 잠깐 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젊음이란 참 좋은 것이다.

 가끔 둘이 언제 저렇게 친해졌 싶은 학생들이 있는데 클럽 가는 날에 찍은 수많은 사진이 그 친분의 이유를 말해 준다. 그렇게 클럽 정이 켜켜이 쌓여서 친해지기도 한다.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친밀감이 느껴진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국적과 인종이 같은 사람보다 가까운 느낌이 든다.

 

 친한 동료 선생님과 카페에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워낙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 같이 이야기하면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이야기를 해 보면 선생님하고 저는 참 다른 것 같아요. 성격도 취향도 완전. 그쵸?”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맞아요. 진짜 다르죠. 그래도 우리가 또 불호는 일치하잖아요. 그러니까 친하지. 는 사람마다 당연히 다 다른 거고 불호만 일치하면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호불호’. 우리는 그중 불호가 일치하는 사람들이구나.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의 불호 중 불호는 자기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자신은 뒤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란다. 그런 선생님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상처를 받을 때가 많아서 같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낯설지 않은 사람이다.

 나의 불호 동의할 수 없는데 좋은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oo 씨가 말이 좀 험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아.”

 “oo 씨가 성격이 급해서 욱할 때가 있긴 한데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의 기준이 뭘까? 다른 사람에게 험한 말을 안 하고 자기 기분대로 상대방을 대하지 않는 정도의 예의가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닌 건가. 나의 경험상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잘못한 것도 없이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며 안 좋은 분위기를 참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어떤 점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의 근거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싫어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은 같이 욕하다가 친해질 수 있다.

 “진짜 그 사람 미친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내 말이요.”

 딱 내 마음같이 싫은 점을 술술 말해 주니까 속이 시원하고 같이 짜증을 내다 보면 흥이 절로 난다.

 불호가 일치하면 싸울 일이 별로 없는 것도 좋다. 자기가 싫어하는 행동을 상대방에게도 안 하기 때문에 서로 기분 나쁘거나 서운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어 잘 싸우지 않는다.

 를 들어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연락을 안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만나면 그런 걸로 싸울 일은 없진다.

 내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약간 개인주의 성향을 가졌다. 본인이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관심이 부족하다고 서운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게 편하다. 조언을 한답시고 이래라 저래라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주다가 상대가 의견을 묻거나 조언을 구할 때 말을 해 준다.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랫동안 정답게 잘 만나 오고 있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이 같아서 친해질 때가 많았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반가워서 같이 즐기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호가 일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훨씬 크다. 최소한 불호가 일치하니 우리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된다. 호까지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런 욕심은 내려 놓고 불호가 일치하는 사람들즐겁게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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