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휴직을 한다기에 카톡으로 물었다.
"휴직 계획이 어떻게 돼? 매우 궁금"
답이 왔다.
" 기생충의 송강호"
이게 제대로 된 문답일까?그런데 또 알아들었다.
"계획이 없다고? 왜?"
아무 계획이 없단다. 길게 쉬어 본 적이 없어서 아직 모르겠다고. 우리는 긴 세월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다.
시간 강사의 삶에서 휴직은 돈이 안 나오는 기간이 생긴다는 뜻이다. 나도 쉬고 싶지만 막상 몇 달 동안 월급이 없다고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
새해 계획을 안 세운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어릴 때는 안 지켜질 걸 알면서도 매년 계획을 세웠는데 언젠가부터 그만두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일까?
오랜만에 계획을 세웠다. 8월 중순에 브런치를 시작하고 가을에 글을 열심히 써서 브런치 북을 완성해 볼 계획이었다.
며칠 전 아침에 갑자기 학교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가을 학기부터 시작되는 일을 할 사람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몇 년 전에도 했던 일인데 1년 넘게 밤낮없이 일한 고생스러웠던 나날이 떠올랐다.
카톡이 생기기 전까지는 분명 '초대'는 즐겁고 좋은 이미지의 단어였는데 카톡이 의미를 바꿔 버렸다. 나는 '초대'를 받고 기뻐하지 못했다.
앞으로 바빠지는 것이 확정되어 친구의 휴직이 더욱 부럽기도 하고 대리 만족이라도 하려고 계획을 물었는데 없다고 하니 계획 없이 그냥 지내도 되는 자유가 더 좋아 보였다.
IT 회사에 다니는 선배가 퇴사를 했는데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다시 회사에 출근을 하게 돼서 괴롭다며. 새로 들어온 사람과 한 달 정도 같이 일하며 인수인계를 다 하고 부모님 집에 내려간다고 했던 게 6월 말이었다. 코로나 백신도 맞고 하루 10시간 이상 신생아처럼 자며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후임자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윗사람이 연락했으면 거절했을 텐데 동료가 전화해서 일을 혼자 다 할 수 없다고 살려달라고 해서 8월 한 달을 출근하게 된 것이다.
8월 31일에 칼같이 나갈 것이라 했던 선배는 9월 3일인 오늘도 출근했다. 회사 일에 문제가 생겨서 같이 수습 중이다. 선배의 퇴사는 마치 7월 한 달 간의 휴가처럼 의미가 바뀌었고 선선해지면 여행을 다니려던 선배의 계획은 틀어졌다.
송강호가 현명했다. 계획은 세워봤자 그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