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행성이라 밤이 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일도 잘 된다. 그렇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자야 한다는 것도 안다. 어느 날 밤에 자기 싫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자기 싫은 밤’이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쳐 봤다. 격하게 공감되는 말이 검색되었다.
‘인생은 자기 싫은 밤과 일어나기 싫은 아침의 연속이다.’
내 인생도 정말 ‘자기 싫은 밤과 일어나기 싫은 아침의 연속’이었다. 밤이 되면 왜 이것저것 하고 싶고 자기 싫을까.
책도 밤에 읽으면 잘 읽히고 노래도 마음을 적시고 늦은 밤에 하는 TV 프로그램 중에 취향에 맞는 것이 많다.아직 자고 싶지 않아도 시계를 보면 이미 늦은 시간이라 자야 한다. 나는 그 시간이 낮인 나라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한국어가 아니라 다른 나라 말을 가르치며 살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기 싫은 밤이 많아서 취침 시간은 자꾸 늦어지고 다음 날 아침에는 못 일어나서 낑낑댄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여유롭게 뭔가를 준비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전날 모든 준비를 끝내 둔다. 수업 준비는 다 되어 있고 그 안에 나만 쏙 들어가면 수업이 완성된다. 수업 시간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인천과 부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원래 가까운 데 사는 사람이 늦고, 멀리 사는 사람은 안 늦는 것이긴 하지만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한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왜 외국인 학생들보다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질까?
학생들이 지각하면 솔직히 부럽다. 장마철이나 한파가 찾아올 때면 나도 학생들처럼 결석하고 싶다.학교에 안 갈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는 없어서 슬프다.
1급에서 6급까지 2년 정도 학교를 다니면서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고 100% 출석을 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졸업할 때 학교에서 특별히 선물을 준비해서 전달했는데 나는 진심을 다해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눈이 떠질 때까지 잘 수 있는 주말 아침을 사랑한다. 아는 언니가 주말 아침 일찍 카톡을 보낸 것을 보고 물어봤다.
“언니는 주말인데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요?”
“예전에는 나도 늦게 일어났는데 나이가 드니 아침잠이 없어지더라. 그리고 밤을 새워도 끄덕 없었는데 요즘은 10시만 되어도 꾸벅꾸벅 졸아.”
몇 년 더 지나면 나도 그렇게 될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아침에 벌떡벌떡 잘 일어나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밤 10시가 자는 시간이 되는 것도 아직은 낯설다. 자기 싫은 밤과 일어나기 싫은 아침은 세트라서 10시에 자게 되면 일어나기 싫은 아침도 자연히 사라지겠지. 오래 함께 한 옛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허전하다.
지난주 월요일 아침은 늦잠을 자 버려서 마음이 더욱 급했다.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일 것이다.'빨리 좀 바뀌어라 신호등'
마치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육상 선수와 같은 마음으로 신호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드디어 신호가 바뀌었다. 신호를 기다리느라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 나만 늦은 게 아닌지 같이 서 있던 사람들도 신호가 바뀌자한 팀처럼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아.... 어머, 어떡해. 아프겠다.’
앞에 뛰어가던 여자가 횡단보도 끝에 있는 턱에 걸려 넘어졌다. 출근할 때 횡단보도에서 자주 마주치던 사람이다. 전철역까지 뛰어갈 때 너무 자주 봐서 익숙한 뒤태를 보고 바로 알아봤다.
동료 선수가 넘어진 듯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사람도 나처럼미라클 모닝국의 국민이 되거나 아침형 인간 같은 인종에 속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서 가깝게 느껴지고 마음이 더 아팠다.
요즘 운동을 전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가끔 뛴다. 늦잠을 잔 날 아침마다 전철역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내가 그나마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을 자주 보는데 아이들은 매일 뛰어다닌다. 왜 그렇게 뛸까?남자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서로 잡고 잡히고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뛰어다닌다. 참 즐거워 보인다. 즐겁게 뛸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의 특권인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먹고살려고 뛸 때가 많아서 즐겁게 뛰는 건 조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