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반찬 가게에 들렀다. 고기인 줄 알고 집었는데 콩고기였다. 콩으로 고기 식감이 나게 만든 콩고기. 맛도 비슷하다고 하던데 정말 고기처럼 생겼다.
예전에 가르친 학생 중에 채식을 하는 대만 여학생이 있었다. 한 학기에 한 번 문화 체험을 하러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그 학기는 민속촌이었다. 문화 체험에 대한 공지를 하면서 점심은 민속촌 안에 있는 식당에서 단체로 먹는다고 하자 그 학생이 나에게 와서 메뉴를 물었다. 자신이 채식주의자라며.
학교를 통해 문의해 봤다. 조리 과정에서 여러 재료가 들어가고 단체 주문이어서 음식을 따로 준비해 주기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학생이 자기가 먹을 음식을 싸 오겠다고 했다.
민속촌 식당에서 우리 반 학생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식사를 할 때였다.
“언제부터 채식을 했어요?”
“가족들도 채식을 해요?”
대만 학생이 싸 온 주먹밥을 보고 채식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가족 모두가 채식을 한다고 했다.
“부모님도 OO 씨처럼 날씬해요?”
“네, 가족들이 모두 말랐어요.”
그 학생은 키가 작고 굉장히 마른 체격이었다.
“채식을 하면 고기 먹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네. 고기를 안 먹어 봤는데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우와,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학생들이 다들 놀라워했고 나도 옆에서 조용히 놀라고 있었다. 부모님이 채식주의자면 아이가 태어나서 한 번도 고기를 안 먹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집안에 고기 자체가 없고 고기를 먹는 모습도 본 적이 없고 채소와 과일만 냉장고에 있는 것이 당연한 집에서 자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콩고기는 그 학생 같은 사람에게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고기의 맛과 식감을 아는 사람에게 좋은 것이니 고기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콩고기 같은 것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마트에서 무알콜 맥주를 찾는 친구에게 그럴 거면 그냥 탄산음료을 마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친구는 그래도 다르다고 했다. 기분이 다르다고.
임신한 선생님이 커피를 못 마시는 것이 괴롭다고 해서 카페인이 없는 커피를 검색해 봤다. ‘임산부 커피’로 불리는 이탈리아 제품이 있었다. 사실은 커피가 아니라 보리를 볶은 것이라서 카페인이 없고 쓴맛이 많이 나는데 커피 맛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커피계의 콩고기였다.
처음부터 나의 세계에 없던 것이라면 몰라도, 내가 아는 것이 없어지면 조금 허전하다.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코로나로 여행을 다니기 어려워진 후 EBS 세계테마기행을 열심히 보게 되었다. 출연자가 외국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걸으면 같이 걷는 기분이 들고, 광장에 서서 거리 공연을 보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프랑스 편을 보고 예전에 갔던 파리 여행이 떠올라서 다시 가고 싶었다. 언제 갈 수 있으려나.
내가 일하는 대학교 안에는 유럽에서 보던 돌바닥 같은 것이 있다. 어제 일부러 그 길로 걸어 갔는데 염려하던 대로 구두 앞이 까졌다. 그 돌바닥의 치명적인 단점은 구두 앞코가 잘 까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길을 걸으니 외국에 온 것 같아서 잠깐이지만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