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Aug 20. 2021

내 이름이 내 이름 같지 않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듯

  첫 수업 시간에는 자기소개를 한다. 학생들에게 출석부 영문명 옆에 한글로 이름을 써 달라고 한 후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얼굴과 이름을 연결해서 외운다. 아직 한글을 배우지 않은 초급 1단계 학생들의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이름을 내가 한글로 써 주는데 외국인 학생들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기가 참 어렵다.

 우리나라 말 글자로 다른 나라 사람의 이름을 쓰려니 딱 맞게 쓸 수가 없다. 중국 학생들 이름은 한국어 모음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고 발음하기도 아주 힘들다. 한글로 어떻게든 써 봐도 영 다른 이름이 된다. 표기법에 따라 쓰면 실제 발음과 많이 달라 내 이름이 내 이름 같지 않다. 그래서 중국 학생들 중에는 중국어 발음 대신 한자음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학생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선생님들을 힘들게 할 때가 있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개미’와 ‘양파’. 그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도 힘들었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웃지 않고 ‘개미 씨’, ‘양파 씨’라고 부르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외국인 학생들도 자기 이름을 말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표기를 바꾸거나 한국 이름을 짓는 학생도 있고 재미있어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학생도 있다. ‘개미 씨’와 ‘양파 씨’는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재미있다며 그 이름을 고수했다. 미국 학생 Scott은 처음에 이름을 ‘수컷’이라고 썼는데 ‘수컷’의 의미를 알려 주었더니 ‘스캇’을 선택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학생 Kasym이 ‘가슴’이라고 쓴 이름은 ‘카슴’은 어떠냐고 권해 보았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자기 이름이 불릴 때 그것이 자기 이름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한글로 표현된 이름은 자기 이름 같이 들리지 않아 낯설기 때문이다. 한국인 선생님이 저렇게 부르는 것이 나라는 것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 학원에 가면 처음에 영어 이름을 하나씩 지으라고 하던데 서로 부르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쉬워서 그런 방법도 좋은 것 같다. 물론 내가 Alice라고 지어 놓고선 Alice가 누군가 할 때가 있다. 내 이름 같이 느껴지려면 이것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

 Daniel 씨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다니엘’이라고 부르면 전혀 자기 이름 같지 않다고 ‘댄열’이라 불러 달라 했다. 댄열, 댄열, 댄열. 꽤 Daniel 발음에 가깝다. Kevin씨도 ‘케빈’ 대신 꼭 ‘케븐’이라고 이름을 썼다. 표기법에는 안 맞지만 자기 이름을 인식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수업 첫날에 이름을 써서 각자의 책상 앞에 붙이게 하는데 프랑스 학생이 ‘즤스틴’이라고 써서 붙인 종이는 한 학기 내내 나의 입술을 힘들게 했다. 차마 부르지 못할 이름은 아니지만 선뜻 부르지 못하고 잠시 입술을 준비할 시간을 갖고 불러야 했다. 사실 ‘ㅇ’이외의 자음은 ‘ㅢ’와 결합할 때 ‘ㅣ’로 발음하면 되니 ‘지스틴’이 되는데 학생이 굳이 그렇게 썼기 때문에 한 학기 동안 최선을 다해 보았다.


 성씨가 바뀌는 것에 대해 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은 대개의 경우 아버지 성을 따르고 결혼 후에도 성이 바뀌지 않는데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뀌는 나라도 있으니 어떤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쓴 이름인데 성이 바뀌면 조금 서운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성이 같은데 가족 중에서 저만 다르면 더 서운할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다.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우리 집 식구 중에 엄마만 성이 다르다. 결혼을 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면 모두 같은 성을 가진 또 다른 한 가족이 생긴다. 결혼을 하면서 내 가족의 범위가 확실히 달라지는 느낌이다. 이름을 통해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매 학기 학생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우고 10주 동안 부르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 학기만 지나도 생각이 잘 안 난다.

 졸업 후에 고등학교를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이름을 기억하시지 못해 섭섭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친구의 섭섭함도 이해되지만 미안하고 난감하셨을 선생님 심정도 나는 안다.

 학생들의 이름은 왜 한 학기 만에 내 머리에서 지워질까? 머리의 저장 공간이 부족할까 봐 친절하게 자동 삭제되는 이 기능 때문에 땀이 날 때가 있다. 예전에 가르친 학생을 우연히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이름이 생각날 듯 말 듯하다.

 아, 불러야 하는 타이밍인데......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제일 먼저 이름을 묻고 기억하려고 한다. 이름은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해 주고 내 인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이름 하나를 가질 수 있다. 표기가 안 돼서 약간은 낯선 이름을 가질 수도 있고 그 언어에 어울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 익숙한 이름 대신 약간 낯선 이름으로 불리며 로운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