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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Jan 30. 2022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

 설날이 되었다. 음력 설이다. 해가 바뀔 때 이미 학생들과 새해 인사를 충분히 나누어서 또 인사를 하기가 좀 그렇다. 이번 설에는 한국 사람 위주로 새해 인사를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새해 인사를 누구에게까지 해야 할까 카톡을 보고 있자니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친구는 누군가를 계속 만나고 안 만나고의 기준이 ‘예능의 3대 요소’와 같다고 했다.

 “예능의 3대 요소가 뭔데?” 내가 물었다.

 “재미, 교훈, 감동.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예능이 되려면 이 3가지가 있어야지.”


해가 갈수록 카톡에 있는 친구 목록은 길어지지만 실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중 관계가 유지되는 사람도 있지만 서서히 연락이 끊기는 사람도 있다. 친구의 말대로 그 둘을 나누는 기준은 재미, 교훈, 감동일까?


 다른 건 몰라도 재미있는 사람은 계속 만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중학생 때 친구들이 모두 잘생긴 교회 회장 오빠를 좋아할 때도 나는 홀로 유머러스한 다른 오빠를 흠모했다. 재치 있는 말 한 마디에 호감이 급상승할 때가 많았다. 오빠의 농담에 광대가 아프게 웃다 보면 어떤 날은 잘생겨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나타났다.

 남녀를 불문하고 함께 있으면 즐겁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 팍팍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 웃게 해 주는 사람을 찾게 된다. 나도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동료 선생님은 내가 하는 실없는 농담들은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그때 생각나서 웃는다고 했다. 숙성 기간이 필요하고 일부 계층만 좋아해서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어려운데 어쩌지..


 교훈은 어떨까? 교훈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좋다.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깨달음을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이런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가치 있게 느껴진다. 주 3회 수영장에 꼬박꼬박 가는 친구가 있다.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하더니 이제 간단한 회화가 가능해졌다. 나와 같은 24시간을 가진 사람인데 시간을 이렇게 알차게 쓴다. 그 친구를 만나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안 지켜질 것을 알면서도 부질없는 다짐을 한다.

 얼마 전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선생님에게 카톡 메시지를 받고 약간 놀랐다. 내가 카톡으로 뭘 물었었는데 개인 카톡이 아니라 단체 카톡방에서 다른 사람한테 물은 걸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답을 안 했고 그걸 뒤늦게 알고는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고 괜찮다고 했는데 ‘죄송해요. 앞으로는 주의할게요.’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잘못을 사과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을 약속하는 메시지. 항상 분명하고 확실하게 감사 인사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착각하거나 잊어서 미안한 상황이 생겼을 때 고의가 아니었음을 밝히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사과에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약속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그 선생님 덕분에 깨달았다.


 감동을 주는 사람은 조금 부담스러운가? 감동을 주지 않더라도 감정적인 교류가 가능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특히 내가 힘들 때는 공감 능력이 있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 내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 주거나 깜짝 놀랄 솔루션을 전수해 주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상대가 필요한 것이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동료 선생님이 결혼 준비를 하면서 대학 친구들에게 섭섭함이 폭발해서 사이가 틀어지게 된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선택해야 할 것이 많아서 이것저것 의견도 물어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친구들이 자기 마음같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 때부터 붙어 다니던 절친들인데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어릴 때는 싸우고 그러지만 커서는 그러지 않잖아요. 맞지 않는 사람하고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거 같아요.”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선생님들이 말했다.

“그러다 곁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해요?”

“그래, 다 멀어지고 아무도 없는 건 좀 그렇잖아.”

사람마다 다르구나. 나는 아무도 없어서 외로울까 봐 나랑 맞지 않는 사람 곁에 남아 있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싫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을 택하는 것이 마음 편한데 다들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의 관계가 유지되는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니 한쪽이 원한다고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관계가 유지된다. 만날 만해서 만나고 안 만날 만해서 안 만나게 되는 것이겠지. 이유가 어떻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내가 누군가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인 것도 감사하다.

 올해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야겠다. 외국인 학생들은 설날이 두 번 있는 것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된다고 하지만 연락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어서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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