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블루스 Mar 31. 2022

주의 산만 출근 풍경

3월의 마지막날 아침

화장실에서는 오늘도 담배냄새가 올라온다.

올라오는 건지 내려오는 건지, 범인을 잡으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입을 옷을 대보고 더 이상 젊지 않아서 우울하다는 생각을 걷어낸다. 

바깥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적당한 두께의 옷을 골라 입는다.

집 앞을 나서면 언제나 좋아하는 나무가 나를 맞이한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꽃이 좀 늦게 피는 감이 있다.

구글에서 보내주는 추억여행을 보면 벌써 꽃이 피어 있어야 하는데 어린순 정도만 올라 와 있으니 친구 같은 그 나무의 안부를 슬쩍 걱정해 본다. 따라서 의식은 기후위기나 온난화에 대해서 생각을 따라 가보기도 한다. 각자 자리에서 각자의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살면 구조적으로 좋아지려는지 알 수는 없다. 전략이 문제인지 의식이 문제인지 어디서 잘못되어서 엉망진창인 지구가 되었는지 누구도 진단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 따라가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7분 정도를 걷다 보면 500세대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을 지나게 된다.

두대의 타워크레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크레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의식하면 기계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감정적으로 변한다. 오늘도 무사하게 작업이 끝나길 바라보기도 하고, 저 작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있으려면 얼마나 심심할까, 화장실은 어쩌나, 같은 생각들을 해 본다. 

봉지에 담은 도시락이 매달려서 올라가고 있다. 밥이라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3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곳으로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우울해진다. 뭐 별로 한 일도 없는데 1분기가 지나갔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중년이 되어 버렸다.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전기차가 눈에 들어온다. 겨우 한 두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외관에는"질문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질문하지 마세요."라는 종이를 붙이기까지 차주인의 시달림이 느껴진다.

주택가에서 나오는 라면 냄새로 의식이 따라간다. 

라면 냄새는 언제 어디서 맡아도 침이 고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동네 주민을 마주친다.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열무 좀 사다가 김치 좀 담을 까 싶어서."

"요즘 열무 비싸던데..."

"김장김치가 벌써 질려서...."

"네, 다녀오세요."

김장김치가 질리는 때이구나, 나도 열무김치를 담을까 하다가 생각을 밀어낸다.

일을 하기가 싫은 몸이 되어버렸다.

진달래, 산수유가 피고 또 목련꽃의 그 존재감을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풀 하나 새순 하나 피어내야 하니 봄이란 놈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에 비해 나의 존재는 또 너무 보잘것없다.

15분을 걷다 보면 직장에 도착해 있고 잡다하게 올라와 있는 생각들을 걷어내고 출근한다.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너무 어려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