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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Mar 15. 2022

우리가 몰랐던 삼국시대 이야기. 2.(3)

8) 단절된 우리 역사, 발해(대진)

우리가 몰랐던 삼국시대 이야기. 2. 끝없는 분열의 시대(3)


8) 단절된 우리 역사, 발해(대진)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가 세운 나라(기마종족 연맹)로 대조영 + 걸사비우(말갈족) + 이진영(거란족)이 연합하여 형성된 나라입니다. 건국 초기(대조영)은 말갈족 대부분을 복속시켰으며, 돌궐, 거란과는 연맹을 맺어 발해를 세운 것입니다.

중기(대흠무)에 들어서면서 발해는 수도를 남으로 옮기며 신라 압박합니다.

그리고 말기(대인수)에는 흑수말갈을 흡수하며, 중앙집권적 권력을 강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부족들의 반발하였고, 결국, 거란의 독립, 흑수말갈의 이탈 등으로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 나간 거란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마종족 연맹 국가가 탄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요나라였습니다.

이 시기에 한반도는 후삼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중국 역시 당나라가 멸망하면서 어지러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일어난 요나라가 힘을 얻으면서 발해를 멸망(926년)시켰던 것입니다.

발해의 멸망은 단순한 내부적 갈등과 분열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 숫자가 적었던 고구려 유민들이 더 많은 말갈족과 거란족을 통치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습니다.

당나라의 주도로 이루어진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당나라는 특히 고구려의 저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고구려 유민들이 뭉칠 수 없도록 그들을 최대한 분산한 다음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물론 발해의 건국 이후 그 소식을 듣고 당나라에서 정한 거주 지역을 탈출해 합류한 고구려인들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소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시 한번 고조선이 추구했던 기마종족 연맹은 분열되어 흩어졌고, 이후 자신들끼리의 갈등과 경쟁을 지속하게 됩니다. 


9) 축소된 역사를 결정지은 고려

천 년 가까이 지속되던 신라는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인재를 제대로 수급하지 못했고, 결국, 지방 호족들이 힘을 키우며 나라가 나뉘어 졌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신라와 후백제, 후고구려가 힘을 겨루던 후삼국시대입니다. 물론 후백제, 후고구려가 건국된 900년, 901년 당시 발해는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후사국시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명칭이 될 것입니다.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세력을 키워가면서 신라의 힘은 더욱 줄어들었고, 후백제는 신라를 침입해 경애왕의 자살을 종용할 정도로 그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후고구려의 궁예가 민심을 잃으면서 새롭게 고려의 왕이 된 왕건은 이런 신라를 도우면서 후백제를 견제합니다. 결국,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게 되었고(935년), 후백제의 견훤 역시 자신의 아들에게 감금당했다가 탈출하면서 왕건에게 항복하며 후백제의 멸망(936년)을 돕습니다.

이처럼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전인 926년 발해가 멸망하며 거란족이 세력을 키웁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북방으로 뻗어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거란족에 흡수된 돌궐족, 여진족, 말갈족을 회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왕건은 기마종족 연맹의 재결성이 아닌 독자적 역사를 채택합니다. 거란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현재 북한의 의주군와 항주군을 연결하는 천리장성을 쌓으며 다시 수세적 입장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고구려가 후기에 천리장성을 쌓으며 안으로 움츠러들었다면, 고려는 초기부터 천리장성을 쌓으며 북으로 뻗어나가길 포기한 것입니다. 이를 비교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구려의 천리장성: 631∼647년, 약 16년에 걸쳐 완성, 비사성 – 요동성 – 부여성 연결, 중국 한족과의 경계선 적인 성격, 대륙에 대한 기득권이 중국으로 이전

고려의 천리장성: 1033 ~ 1044, 12년에 걸쳐 완성, 압록강 어귀 ~ 동해안 도련포 연결, 거란, 여진 등의 기마종족과의 경계선 – 대립, 기마종족간의 내부 투쟁


결국 고려의 선택은 우리 민족이 다시는 기마종족 연맹과 함께 북방을 호령하는 기상을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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