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태어나기 이틀 전,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 진통 오는 것 같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분명 9개월을 준비했는데, 막상 그 순간이 오니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병원에 도착하고, 분만실 앞 복도에 앉아있는 동안 느꼈던 감정들. 솔직히 말하면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건 두려움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감정을 가감 없이 적어보려 합니다.
분만실 앞,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분만실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혼자가 됐습니다. 안에서는 아내가 진통과 싸우고 있는데, 저는 복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그냥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출산 전에는 "나는 강한 아빠가 될 거야"라고 다짐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 다리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나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옆에 앉아계시던 장모님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셨는데, 그 말이 오히려 눈물을 참기 어렵게 만들었어요.
시계를 보니 2시간이 지났는데 체감은 10시간 같았습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내한테 보낼 응원 문자를 써놓고 지우기를 열 번쯤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첫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응애-" 하는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습니다.
그 순간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진짜로. 드라마에서 보면 아빠들이 울잖아요. 저는 그게 연출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그 울음소리를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기쁨이었을까요? 솔직히 그것보다는 "아, 살아있구나. 무사히 나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더 컸습니다. 아내도 무사하고, 아이도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어요.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든 생각
간호사분이 아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 제가 처음 한 말은 "진짜 작다..."였습니다. 3.05kg이라고 했는데, 두 손에 올려놓으니까 깃털처럼 가벼웠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처음에 엄청난 부성애가 확 밀려오진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은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를 거구나. 나는 이 아이한테 어떤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주먹보다 작은 손, 꼭 감은 눈,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는 모습. 그걸 보면서 감정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한 번에 폭발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스며들듯이요.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잘 하고 싶다"고.
아내한테 미안하고 고마웠던 순간
분만실에서 나온 아내의 얼굴을 봤을 때, 또 한 번 울었습니다. 13시간 동안 힘들었을 텐데, 지친 표정 속에서도 웃으면서 "아기 봤어?"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복도에서 기다리기만 했는데, 아내는 온 몸으로 이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습니다. 그 순간 느낀 건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앞으로 내가 더 잘 해야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수고했어, 정말 고마워." 딱 그 말밖에 못 했습니다. 더 멋진 말을 준비했었는데, 막상 입에서 나온 건 그것뿐이었어요. 근데 아내는 그 말에 또 웃었습니다.
아빠가 된 첫날 밤
그날 밤, 병원 간이침대에 누워서 잠이 안 왔습니다. 아이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숨을 쉬는지 계속 확인했어요.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걸 보면서, "아, 이게 아빠 되는 거구나" 하고 처음 실감했습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어야지, 지인들한테 연락해야지 생각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아이 얼굴만 봤습니다. 핸드폰보다 이 얼굴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지유야 반가워 :) 너무 보고싶었단다 ㅎㅎ"
지금 이 글을 읽는 예비 아빠에게
만약 곧 아빠가 되실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려워도 괜찮습니다. 출산 당일에 울어도 괜찮고, 아이를 안았을 때 바로 부성애가 안 와도 괜찮습니다.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확실하게 옵니다.
그리고 출산 후 아내한테 꼭 말해주세요. "수고했어"라고. 간단한 말인데, 그때 그 상황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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