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시작해 보는 거야

감정을 다듬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by 행복 한스푼

땀은 댐의 문을 개방이라도 한 듯 멈추지 않았다. 그 분출로 체온을 낮추는 데 성공하지만 마치 세수라도 하고 온 사람이라고 오해를 샀다. 그런 나에게 여름은 만만한 계절이 아니다. 외출 시 손에는 수박만 한 왕 부채, 장마와 햇빛을 동시에 해결할 우산 겸 양산, 목에는 냉동고에서 막 꺼낸 넥쿨러, 가방에는 수건처럼 도톰한 손수건까지 철저한 준비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외출 후, 집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다.

현관 밖을 나서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 콧속 깊숙이 파고든다. 곧바로 “음”이라는 비명이 목구멍에서 올라온다. 걸음마다 조그마한 땀방울이 알사탕을 제조하듯 뭉글뭉글 만들어진다. 채 5분도 안 되어 굵은 땀줄기는 구레나룻을 지나 턱을 타고 목으로 또르륵 미끄러졌다.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걱정 때문인지 한 2주간 음식이 들어가도 제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혀라는 감각기관에도 무거운 벽돌 다발을 얹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소설 쓰기를 결심했을 때는 글쓰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문장력을 키우고, 스토링텔링 하는 법, 인물들을 끌어와 묘사하는 법 등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대로 수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참고할 괜찮은 단편 소설들을 읽었고, 당장 자신의 작품을 쓰며 합평을 받아야 했다.

다른 동인들의 합평을 들을수록, 글 쓰는 일이 두려웠다. 한동안 글을 놓았던 핑계가 되기도 했다. 작가님은 어떤 작품이든, 잘 쓰든, 못 쓰든 당연히 깨질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그게 내가 되려니 글쓰기보다 걱정으로 시간을 메웠다. 아예 시작도 할 수 없었다. 쓰려고 자리에 앉는 순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커서의 깜박임처럼 눈만 깜박였다. 점점 눈두덩이가 무거워져 그 깜박임조차 멈춰 섰다. 잠이 쏟아졌다. 자고 또 자고 끝없이 졸았다. 그러면서도 양심은 있었는지 소파에서 책을 베개 삼아 졸았고, 책상에선 노트북의 전원을 켜 놓은 채 엎드려 잤고, 침대에선 노트를 펴 놓고 새우등처럼 한껏 말아 불편한 쪽잠을 잤다.

합평 날짜를 받고 보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뇌에서 위기 경보를 비정상적으로 울려댔다. 이제는 모든 잠을 다 잔 사람처럼, 잠이 오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다. 소설학교 수업 신청 때 제출한 소설 줄거리를 손에 쥐고, 어떻게 이 줄거리를 풀어나갈지 읽고 또 읽어나갔다. 나의 목표는 생각한 줄거리를 다 표현해내는 것과 최대한 분량을 뽑아 단락장 연습을 하는 것으로 잡았다. 결국 ‘많이 쓰자!’였다.


야외 러닝 대신 실내자전거를 탔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을 움직여야 했다. 고된 몸을 만들고 나면 숙면이라도 취할 수 있고, 그러면 한결 가벼워진 머리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전에 잠을 몰아 다 자버린 탓인지, 머릿속이 복잡한 탓인지, 잠을 잘 수 없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며 이것저것 쓰기 시작했다. 한두 줄만 쓰려던 것이 갑자기 신들린 듯 써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노트북을 켜면 모든 생각이 달아나 버릴까 봐 핸드폰으로 계속 써나갔다. 그제야 무엇인가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피아노를 가려고 건널목에 섰을 때도, 방송 댄스를 가려고 이동하는 길가에서도, 머릿속은 줄거리를 어떻게 전개할지로 복잡했다. 갑자기 방송 댄스에서 배웠던 GD의 TOO BAD라는 곡을 소설에 넣어주면 재밌을 것 같았다. 외국인 슈퍼바이저를 인물로 설정하면 괜찮겠다고 추가했다. 바로 핸드폰에 짧게 메모하며 집에 와서 TOO BAD의 안무를 수십 번 보았다. 배울 때는 몰랐는데 가사가 이렇게 영어로 가득한지 새롭게 알았다. 믿기 힘들게도 내가 생각해낸 춤 동작은 브릿지 동작 하나뿐이었다. 모든 동작은 이미 나에게서 휘발되어 없어져 버렸다. 난생처음 보는 동작 같았다. 물론 방송 댄스에서는 수강생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절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린트된 가사지를 놓고 동영상과 비교하며 동작을 설명하려는데 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애꿎은 연필만 꾹 쥐었다가 살며시 펴기를 반복했다. 역시 안될 때는 귀가 익숙해지도록 노래만이라도 들었다. 설거지할 때도, 요리할 때도, 빨래를 갤 때도 들었다. 몹시 신나기는 했다. 리듬에 궁둥이도 씰룩대면서 글 쓸 때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했다. 방송 댄스 수업 때 선생님의 가르치는 모습도 더 세심히 관찰했다. 어떻게 동작을 설명하고 박자 카운트를 세는지 모든 것이 소설 재료로 쓸 수 있음에 신났다.

소설을 쓰며 뭔가 풀릴 듯하면서, 얽혀 버린 실타래로 무엇인가를 짜내는 작업 같았다. 그럴 땐 또 몸이 부지런해져야 했다. 아파트 헬스장으로 가서 천국의 계단을 올랐다. 스님들이 3.000배를 하듯이, 3.000개의 계단을 오르면 뭔가 보일까? 싶었다. 속도를 조절하며 힘들면 한 단계 낮춰서 견딜만하면 다시 속도를 올려 나아갔다. 마음은 안 힘들다고 하는데 몸은 줄기차게 땀 배출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수건은 점점 축축해져 쥐어짜면 수분이 그대로 나올 정도였다. 물도 고갈되어 갔다. 생명수를 한 모금 마시듯 아껴서 나눠 마셨다. 3.000개하고 3개를 더해 3.003개를 채우고 나서 ‘그래 이렇게 한번 해보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내려 올 수 있었다.

씻고 나자 노긋한 피로감도 있지만, 후련함과 뿌듯함이 있었다. 그 마음이 식기 전에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글을 써나갔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조급함도 고개를 불쑥불쑥 쳐들었다. 7~8장에서 고비를 맞이하던 글이 그다음을 넘기자, 분량을 엿가락 늘이듯 쭉쭉 늘려갔다. 우선 쓰고 보는 게 나의 목표였던 만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술해 나갔다. 약간의 유머 코드도 몇 개 넣어주면서 길어진 분량을 보조했다.

재밌었다. 허구의 인물들을 설정해, 사건들을 만들어 가고, 생각들을 중간중간 넣어가는 과정이, 소설이 주는 매력 같았다. 잘 써지지 않아 심술 나긴 했지만, 무엇인가의 문장들을 만들어 가는 창작 활동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마무리하고 보니, 20대의 불안했고 힘겨웠고 폭풍우 속에 있었던 미움 또한 들여다보았다. 상처로 얼룩졌고 속상함을 삭혔던 때를 이제야 온전히 위로했다. 그때는 결코 미움과 고통이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느꼈었다. 이제야 지나가 버린 이야기처럼 덤덤히 할 수 있었다. 조금은 더 용기 내어 살아가라고 주인공을 씩씩하게 그려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합평 수업을 들었다. 긴장감에 얼굴은 굳었다. 잘 수정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작가님께서 주신 말은 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통념 문장과 비개연 스토리의 설정, 리얼리티 소설로는 실격, 왕초보 습작생 같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주인공의 순진하면서 밝은 성격이 일관성 있게 전개되어 21장의 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는 것이었다. 합평 파일을 받아 살펴보니 형광펜으로 소설 구석구석이 덧칠해져 있었다. 이런 문장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분홍색, 노란색으로 물든 A4용지를 보니 난 글 쓰는 소질이 없나보다 좌절했고, 이 문장들을 어떻게 뜯어고칠지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문장들을 다듬고 뒷부분 이야기를 좀 더 짜임새 있게 추가하면 좀 더 완성된 글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십 년씩 쓰는 작가들도 글 쓰는 건 어렵다고 했다. 초보인 내가 왕초보 딱지를 떼었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 글 쓰는 전개에 신경 썼다면 이제는 탈고의 미를 뽑아낼 때라고 여기면 됐다. ‘훅 밀려왔다’와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는 법에도 주의하기로 메모했다.

배움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난관은 더 자주 마주한다. 배움의 크기만큼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건 내가 그만큼 성장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장르의 변화, 나는 어떻게 극복해 나가며 글을 써나갈지 몹시 고민 중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 다만, 우선 시작해 보려 한다.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한다. 끝없이 나아가다 보면, 무수한 점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수놓을 날을 나는 꿈꾼다. 부단히도 몸을 움직이며 근육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나의 삶에 다채로움이 글들에 녹아나길 기대해본다.

“이제, 신나게 소설 수정 한번 해볼까?”


#당진시립도서관소설시민학교수강중

#달리기에진심입니다만

#때론실내자전거한시간과천국의계단에서3003개근력키우기

#초보가왕초보라고불린다고상심만할텐가?

#앞으로나아가라끊임없이나아가라

#언젠가무수한점들이아름다운그림을수놓을날을꿈꾸며

#소설쓰는재미를발견했지만혹평을안긴첫소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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