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부대 2’를 보며 마늘산과 파 더미 임무 수행 완료
매일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하다 보니 간마늘이 바닥을 보였다. 엄마에게 보내 달라고 하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 끝나고 마늘 손질까지 하는 엄마의 수고로움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마트에서 통마늘을 할인했다.
“남편, 이거 3000원이나 할인해! 이거 두 망 사면 한동안은 마늘 걱정 없겠는데?”
“이걸 어떻게 다 까려고? 그냥 한 망만 사자.”
“금방 까. 걱정하지 마. 내가 많이 까봤어. 이 정도쯤은 껌이야.”
나는 두 팔로 들기에도 묵직한 마늘 두 망을 저렴하게 샀다며 기뻐했다.
마늘을 쟁반에 펼쳐 놓자, 사태를 실감했다. 조각조각 통마늘을 분해하는데 끝이 없었다. 할인에 눈이 멀어 호기롭게 두 망을 샀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양이 많아서인지 분해된 마늘산과 껍질 산은 우뚝 솟은 두 봉우리를 이루었다. 물에 담가 놓으면 껍질 까기가 더 수월해진다. 분해한 마늘을 물에 10~ 20분 담가 껍질이 퉁퉁불어 잘 까지길 기다렸다. 5월이 제철인 햇마늘이라 그런지 꼭지를 칼로 제거하지 않아도 잘 까졌다. 옆에 TV를 보고 있던 신랑은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깐 한 망만 사라니깐, 마음 편히 TV도 못 보겠네.”라고 투덜대며 마늘과 쪽파 손질에 합류했다. 까고 다듬고 까고 다듬는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단순노동에는 TV가 제격이다. [강철부대 2] 재방송, 우리나라에 여러 부대가 있다는 것과 부대마다 특수한 임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해병대와 특전사를 비롯하여 SDT(군사경찰 특임대), UDT(해군 특수전전단), SART(공군 특수탐색구조대대), SSU(해군 해난구조전대), HID(국군정보사령부 특임대), 707(제707 특수임무단) 같은 생소한 부대들의 모습도 신기했다. 특히나 군복이 아닌 수트 정장을 입은 정보사 HID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여자들의 육아 무용담처럼 남자들의 군대 생활을 간접 체험하니 없던 전우애도 느껴졌다. 사격할 때는 긴장감에 까던 마늘을 놓치기도 했다. 예상과 다르게 참호격투의 승자가 달라질 때는 통마늘을 부여잡고 결과를 지켜봤다. 역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말을 실감했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을 때는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정도 분량의 마늘 까는 것은 껌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자꾸 마늘 까는 손이 멈추었다. 부대마다 자부심도 볼 수 있었고 경쟁하는 묘미가 있었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게 이해 갔다.
탈락 확정 후에도 미션을 끝까지 수행하는 모습을 볼 때는 뭉클함이 있었다. 갑자기 이런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구나 싶었다. 감사하고 듬직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났다. 남편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마늘 때문에 그런 것이여. 우는 것 아니라니까.” 선수 쳤다. 남편은 내가 우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열심히 부연 설명을 하느라 마늘 까는 손만큼이나 입이 바삐 움직였다. 경기를 통해 베네핏을 얻고 탈락 미션이 주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시즌1에서 준우승했던 SSU가 탈락했다. 탈락 후 자기 부대의 동료와 선배들에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흘릴 때는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을까?’ 싶어 짠했다.
강철부대 2를 보면서도 열심히 쪽파도 다듬었더니 어느새 한 웅큼 다듬어졌다. 지글지글 맛있는 파전을 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군침을 한번 삼키고 냉장고로 고이 들여보냈다. 마늘들은 옷을 벗으니 반질반질 예쁜 밤알처럼 빛났다. 한 바가지 가득 마늘이 나왔음에도 아직도 남은 양이 만만치 않았다. 임무를 빨리 끝내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까고 또 깠지만 속도가 나지 않았다. TV를 보다 마늘과 파 머리를 붙들고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파가 가지런한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깐마늘이 영롱한 자태를 뽐낼 때는 ‘파와 마늘이 이리 예쁠 수 있을까?’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노동의 결과물이 정직하게 바로바로 나온다는 점은 단순노동이 주는 장점이다.
어느새 어깨와 허리에는 노동의 대가가 나타났다. 뻐근함과 함께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관절에서는 두둑 두둑 소리로 노래가 만들어질 지경이었다. 어깨에는 오십견 강림하며 내 어깨를 누군가 빨래 집게로 꼬집어 놓은 것 같았다. 분명 내 어깨이건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손톱에는 시꺼먼 흙들이 훈장처럼 자리매김했다. 두 손 가득, 모락모락 그윽한 마늘 내음과 파 냄새가 향연을 이루었다.
믹서기에 갈기 위해 마지막으로 마늘을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뺐다. 깔 때는 이틀이나 걸렸던 작업인데 믹서기로 갈 때는 윙 소리와 함께 10분이면 끝났다.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이야!’ 왠지 모르게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이틀에 걸쳐 마늘산과 파 더미를 해치우고서야 남편과 나는 해방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 단순노동이 이틀이니 재밌지 매일같이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은 덤이었다. 개미가 겨울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처럼 월동 준비를 마친 것 마냥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마늘은 요리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인데 6~7개월 정도는 걱정 없이 요리할 것 같다. 반찬통 5개 분량의 간마늘은 곧바로 냉동실로 직행했다.
문득 농사지은 마늘을 오빠네와 우리, 부모님이 쓸 분량을 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의 시간을 보냈을지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냉동고에 얼려진 간마늘을 맡겨놓은 거 마냥 낼름 받아 왔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간마늘에 담긴 숨은 정성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농사지은 채소나 곡식들을 주실 때 감사한 마음으로 요리를 잘 해서 먹어야겠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