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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스푼 Jul 23. 2024

공격하는 손과 수비하는 입의 치열한 싸움

키 작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외계어를 섭렵하다

  아이들은 밥 먹을 때 바라는 것이 많다. 평범하게 밥 먹는 걸 원하지 않는다. 반찬과 메인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갈고닦은 기술을 현란히 선보여야 한다. 입으로는 실감 나는 의성어를 내뱉고 손으로는 숟가락 비행기를 만들어 곡예를 펼친다.

 “슈우웅~ 우웅 비행기 납시오. 아~ 입 벌려!”

 “한 번 더! 이번에는 프테라노돈처럼 해 줘.”

 “파라랑 빠락 퐈랑락 뽜랑 프테라노돈이 나. 간. 다. 아~~”

 “엄마, 더 재밌게 재밌게!”

 “네엣 그리 합죠(굽신굽신). 쁘라락 뽀랏 프르랏 쁘락”     


 쉬고 있던 왼팔까지 격한 날갯짓에 합류한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원하는 의성어에 높낮이까지 추가한다. 마치 한 마리의 익룡이 아니라 수십 마리의 익룡처럼 감쪽같은 연기력이 필요하다. 이로써 식사 시간은 별의별 의성어가 난무한다. 아이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처절하리만큼 애쓴 흔적이다. 밥을 먹일 수만 있다면 간과 쓸개까지 내어주는 삶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이렇게 사회생활을 했다면 아부의 신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아이의 입꼬리가 씰룩하는 찰나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숟가락을 입속으로 넣어야 한다. 없던 순발력을 발휘할 때다. 마치 공격하는 손과 수비하는 입의 싸움이 치열하다. 수비의 빈틈을 노리는 숟가락의 공격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현란한 소리와 손짓으로 공격 아이템을 장착해 보지만 아이는 더 재밌고 신나게라도 주문하고는 입을 쏙 닫아버린다. 아이의 혼을 빼도록 흡족한 공연을 선보여야지 깍쟁이 같은 입을 벌린다. 오물쪼물 소화하는 동안 어떤 작전으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갈지 내 머릿속도 복잡하다. 그렇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최선을 다하고 나서야 밥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밥 먹이기를 끝내고 나면 전쟁을 한바탕 치른 것처럼 진이 빠지는 이유다.     


 두 아이 모두 2.85kg으로 작게 태어났다. 꾸준히 자랐지만, 또한 꾸준히도 ‘무척 작음’을 유지했다. 영유아 검진만 되면 의사 선생님은 결과지의 그래프를 가리키며 혼을 냈다. 작게 태어난 아이를 표준 아이로 성장시키지 못한 엄마는 바로 대역 죄인이 된다.

 “아이 키나 몸무게가 표준보다 한참 미달인 것 아시죠? 우유나 소고기를 잘 먹이고 있나요?”

 “아예. 아이가 소고기는 잘 먹지 않더라고요.”

 “어머님이 아이의 입맛에 맞춰 요리를 개발하셔야죠? 소고기를 다져서 부드럽게 하면 질기지 않고 잘 먹을 거예요. 아이가 작을수록 어머님이 신경 쓰셔야 해요. 운동도 꾸준히 시켜 활동량도 늘려주시고요.”

 “네에, 제가 좀 더 노력해야겠네요.”

 결국 반성 아닌 반성을,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서야 진땀 빼는 진료를 마쳤다. 의사 선생님의 충고에 비행기가 되고 프테라노돈이 되는 나의 노고는 몹시 초라하게 느껴졌다. 더 열심을 내어 먹이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부여받았다.     

 "오늘은 뭘 해 먹지? 무엇을 먹어야 아이가 잘 먹을까?"

 진료 후, 이 질문은 난제 중에서 난제로 다가온다. 작은 아이를 표준 아이로 성장시켜야 하는 사명을 밥상에 바로 반영해야 한다. 누군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백숙을 먹고 싶다. 소시지 야채 볶음을 먹고 싶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장을 보고 한 끼를 해결할 때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똑같은 걸 먹일 수 없고 해달라는 것도 없는 날에는 참 고민스럽다.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또 한 끼를 준비해야 한다.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꾸러미다. 어제와 다른 반찬 1~2개와 국, 아니면 카레나 제육볶음, 만두전골 같은 주요리가 필요하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한 소고기 요리도 추가된다. 다져서 떡갈비를 만들거나 얇은 불고기 형태로 굽거나 샤부샤부를 내놓는다. 밥에 흥미가 적은 아이들이라 음식이 들어가는 첫 숟가락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표정을 보면 입맛에 맞는지? 안 맞는지? 바로 판가름 난다.     


 “엄마, 맛있어. 더 줘.”

 “엄마, 안 먹을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준이 된다. 뜨거운 불 앞에서 ‘분주히 움직였던 수고가 보상되느냐? 헛수고가 되느냐?’는 1초면 판명된다.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거절당했을 때는 좌절의 쓴맛을 톡톡히 본다. 밥 먹는 시간이 단축될 거라는 희망적인 신호는 단숨에 사라진다. 스스로 밥을 먹는 모습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본인 숟가락 들기를 다음으로 기약해야 한다. 내 앞에는 내 숟가락, 큰 아이 숟가락, 작은 아이 숟가락 무려 3개의 숟가락이 버젓이 버티고 있다. 서로 선택을 기다리지만 역시나 나의 숟가락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내 숟가락은 일명 ‘서열 3위’인 것이다.     


 “굶겨봐라. 며칠 쫄쫄 굶기면 다 먹는다. 쫓아다니면서 먹이니 더 버릇없어지지. 쯧쯧.” 나도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숟가락까지 들고 다니며 아이의 입에 밥 먹이는 모습을 말이다. 엄마들이 너무 극성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들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일상이 될 줄이야. 활동량이 줄고 여러 자극적인 음식들에 노출이 많은 아이들이며 밥을 먹지 않아도 눈을 돌리면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다. 지금 당장 밥을 먹지 않는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조건 굶기는 것은 밥 먹이기 공식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했다가는 작은 아이는 계속해서 작음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도 더욱더 심각해질 게 뻔하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면 ‘그래 먹지 마라! 먹지 마! 네 키 안 크지? 내 키 안 크냐? 나중에 엄마 탓하지 마!’라고 소리치고 싶다. 숟가락도 딱 소리를 내며 몹시 화났음을 팍팍 티 내고 싶다. 현실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꾹 참으며 “한 숟가락만! 딱 한 숟가락만! 그래야 너보다 조금 큰 친구 2명 따라잡는다.”라며 달래듯 아이 입 앞에서 숟가락을 붙들고 있다. 그래야 밥을 조금씩 비워낼 수 있다. 나의 인내력은 매번 테스트받는다. 1단계, 2단계, 3단계를 통과하지만 4단계, 5단계가 되면 몹시 위태롭다. 단전 호흡을 하듯 깊은숨을 몰아쉬며 위기를 견디려고 애쓴다. 때론 인간미 넘치게 버럭 화내고 화해하고 웃고 우는 희로애락을 펼쳐 놓기도 한다.

 "흑흑 밥 다 먹어줘서 고마워. 휴 이렇게 밥 먹이는 게 힘드냐? 이제 쑥쑥 키도 크고 튼튼해져서 의사 선생님께 혼나지 말자.“     


 아이들 밥 먹이느라 다식은 국과 밥을 먹는 일상을 언제쯤 벗어날까? 싶었다. 밥 먹이는데 애를 먹이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먹게 되었다. 여전히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잘 먹고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 나오면 손도 대지 않는 일관성을 유지 중이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여전히 작은 축에 속한다. 큰아이는 밥 먹는 양도 늘고 잘 먹게 되면서 표준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작은 아이는 여전히 몹시 작음을 유지 중이다.     


 나는 밥 잘 먹고 맛있다며 엄지를 번쩍 들어주는 아이의 모습이 가장 좋다. 그 조그마한 엄지가 그렇게 사랑스럽다. 오물쪼물 음식을 씹으며 스스로 통통한 볼을 만들어 낸다는 것 또한 고마울 따름이다. 숟가락을 대기하며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남발했던 삶에서 이제야 사람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감격스럽다. 서로 웃고 떠들며 분주했던 일상을 나누다 보면 부족한 반찬과 음식을 조금은 넘어가 주는 너그러움도 존재한다. 물론 아이들은 밥을 남기고 배고프다는 소리와 함께 다른 군것질거리를 찾아 나선다. 다시 반성하고 열심히 부엌에 서야 하는 이유다. 밥상을 오가던 처절했던 의성어와 몸짓은 사라졌지만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여전히 고민스럽다.

 ”무얼 먹이면 아이들이 잘 먹었다는 소문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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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Jakub Dziubak

사진: UnsplashNatanja Grü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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