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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한스푼 Jul 09. 2024

부부 싸움 VS 극적 화해. 제 선택은요?

‘지옥에 몸을 푹 담가 코스’ 아미산을 오르며

 유년 시절 집 뒤에 산이 있었다. 심심할 때면 산에 올라 나무 그네를 탔고 내리막을 달리며 힘껏 소리도 질렀다. 그 추억 때문인지 산에 오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딱딱하고 평평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낙엽과 흙의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다. “위릭 위릭 위리릭, 뻐꾹 뻐꾹, 티티이 휘익” 다양한 새소리와 “찌르르 푸르륵” 풀벌레 소리도 합주한다. 푸른 잎들은 그늘을 만들고 바람의 지나감을 허락한다. 에어컨의 바람과는 또 다른 청량함이 있다. 입에서는 “너무 좋다. 시원해. 이곳이 천국이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등산은 남편의 휴무 날에 하는 일과 중에 하나다. 높이 349m로 나지막한 아미산에 자주 간다. 이 산은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상이 급경사와 계단으로 되어 마지막이 힘에 부치는 산이다. 일주일에 많게는 3번, 적어도 1번은 난이도를 조절하며 산에 오른다. 몽산을 찍고 아미산을 가는 ‘상냥한 코스’, 대덕산을 경유해서 아미산 정상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하는 ‘지옥 초입 코스’, 아미산 정상을 갔다가 구름다리를 거쳐 다불산과 보령산을 가는 ‘지옥에 몸을 푹 담가 코스’, 순성길로 편히 걷다 성북 2리 입구에서 오르막만 펼쳐지는 ‘이럴 줄 몰랐네 코스’.   

  

 “피아노 공연이 자주 없고 무료로 하닌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 곡이니 얘들을 다독여서 다녀오길 원했어. 안 갔다 오니 기분이 상하더라고.”

 “아이들은 블럭팡에서 좋아하는 블럭 맞추고 나는 편하게 피아노 연주를 듣고 싶었어. 자꾸 아이들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고 ‘좋은 기회인데 왜 안 가냐?’고 몰아세우니 아이들도 기분이 나빠 보였어. 반발심에 피아노 연주회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질 때 서운함과 불만을 털어놓으면 좋다. 처음에는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기 바쁘다. 계단을 오를수록 힘들어서 대꾸할 힘이 없어지고 거친 숨소리가 가득하다. “헉헉헉”의 숨소리가 “어어어(그래 그래)”로 바뀐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서로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대나무 숲처럼 말함으로 속이 뚫리는 후련함이 있다. 상대에 대한 날 선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합의점을 찾으려고 하면 싸움이 되지만 각자의 다른 입장을 듣다보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있는데 옳고 그름의 정답은 없다. 다만 그 문제를 어떤 시야로 바라보았는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존재한다. 묵은 감정을 털어놓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오르막이 끝나기 전에 불편했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     

   

아미산을 등산하고 다불산과 보령산 가는 코스를 ‘지옥에 몸을 푹 담가 코스’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아미산 정상에서 구름다리를 지나고 임도(임시도로)를 갈 때까지만 해도 그날의 등산은 매우 쉬움이었다. 다불산의 계단 지옥을 맛보기 전까지 말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에 할 말을 잃었다. 계단 맛집은 이곳이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이곳에 있는 나는 꿈 속이라고 믿고 싶었다. 돌계단 두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높은 계단과 계단 하나를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낮은 계단이 들쑥날쑥 끝없이 펼쳐졌다. 높이 다리를 올랐다 낮게 올랐다 힘이 배로 들었다. 차라리 일정한 간격의 나무 계단이 끝없이 펼쳐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불산 정상에서 시원한 이온 음료와 초코바에 마음이 녹았다. 역시 먹을 것이 들어가니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초코의 달콤함과 견과류의 오독오독한 식감에 나를 힘들게 한 모든 계단들이 용서되었다. 하산할 일만 남았으니 입방정을 떨었다.

 “힘들어야 등산이고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정상이 값진 것이지.”     


 오르막에는 말이 나오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면 내리막은 허벅지가 후들거리며 도가니가 리드미컬하게 춤췄다. 내가 이렇게나 많은 계단을 올라왔구나 싶었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 아님에 다행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려가는 중에 남편은 보령산 표지판을 보았다. 확신에 찬 듯, 보령산까지 임도로 계속 나오니깐 한번 가보자고 했다. 지금 충분히 힘들고 더는 올라가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진짜 임도만 나올까? 그럼 한번? 다불산의 계단도 가봤는데 설마 이것보다 심하겠어?’라는 마음이 생겨 가보자고 했다. 분명 남편도 초행길인데 너무 자신있게 말하자 임도로 쭉 이어질 것만 같았다.     


 다불산에서 보령산 가는 길은 임도를 지나자 내리막길이 험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산 입구에 들어서자 계단이 시작되었다. 다불산과 다르게 이제는 낮은 돌계단들이 층층이 마중 나왔다. 일부러 계단에 주눅 들까봐 땅만 보고 올랐다. 숨이 꼬딱 꼬딱 넘어가자 한번 올려다보았다.

 ‘설마 설마 이제 끝나가겠지? 정말 끝나겠지? 거의 다 와 가겠지?’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절망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또 숨이 꼬딱 꼬닥 넘어가자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끝나간다는 희망을 얻고 싶었다. 정상이 아니어도 좋으니 제발 평지가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다. 눈을 비비며 다시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우와! 무슨 계단이 이렇게 줄지 않고 더 늘어나 있냐? 아주 요술 계단이 따로 없네!’

 분명 열심히 올라왔건만 에스컬레이터가 나를 아래로 쑥 내려놓았나?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더 이상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쳐다봐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다 왔어!”

 “아직도 끝이 없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될꺼야!”

 이런 희망 고문에 다시 발을 움직여 보지만 얼마 못 가서 멈추고 만다. 다시는 남편과 등산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 뒤통수가 따갑도록 원망 섞인 눈빛을 발사했다. 남편은 나에게 다 왔다고 하지만 도대체 그 정상은 어디에 있는지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정상(산 정상)이고 뭐고 고된 산행에 내 정신이 비정상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나는 1년치 계단을 하루 동안 다 오르는 수행을 하고 있다.’

 주문을 외웠다. 얼마나 대단한가? 나를 칭찬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 반, 칭찬 반을 섞어가며 나를 이끌었다.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가까스로 정상에 다다랐다. ‘하루에 아미산, 다불산, 보령산 3개의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과연 할 짓인가?’ 진저리가 쳐졌다. 당분간은 이 코스로 등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부부 싸움 배틀을 겨루고 싶을 때 오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오르기 전에 극적으로 화해하고 오르지 않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내려갈 때는 마음의 평화가 깃들었다. 풀벌레 소리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배경 음악이었다. 쌍쌍이 눈앞을 지나가는 나비들의 날갯짓도 예뻐 보였다. 남편 따라가기 바빠 보지 못했던 주변도 이제야 두리번거리며 내려왔다. 물론 올라왔던 만큼 내려오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려오고 내려와도 또 내려가야 할 계단이 수없이 펼쳐졌다. 올라갈 때만큼 내려올 때도 계단에 혀가 내둘러졌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허벅지는 후들거리고 도가니는 제 임무를 다하느라 바빴다.     


 산을 오르면 꼭대기에 올라가는 다양한 길을 마주한다. 처음 가는 길은 어떤 지점에서 힘들고 오르막이 얼마나 나오는지 계산하기 어렵다. 앞을 보고 당장 넘어가야 하는 길을 갈 뿐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긴장감과 다 와 간다는 희망 고문이 적절히 섞여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힘듦을 알고 시작하는 것과 힘듦을 모르고도 시작하는 것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간다.     


 등산은 어찌 되었든 힘이 든다. 지금 가는 이 미지의 길이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어떤 경로를 수정하며 나아갈지 선택의 연속이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몸의 고단함이 있다. 시원한 얼음물과 바람에, 새들의 지저귐에 불편했던 감정의 골이 흐릿해지기도 한다. 가장 미웠던 한 사람이 가장 의지할 한 사람이 되고 끝까지 완주하게 해 줄 소울메이트, 영혼의 단짝이 된다. 함께하기에 ‘지옥에 몸을 푹 담가 코스’에서도 견딜 수 있고 즐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대와 함께라면, 달콤살벌한 이 지옥도 흥미진진하게 견디리라.” 


#등산

#부부싸움을하고싶다면오르막에서

#아미산

#천국과지옥을오가는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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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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