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윤정모 장편소설

by 라이블리


2025년 5월 11일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남은 생존자 할머니는 여섯 분이다. 이제 여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이분들의 목소리는 누가 대신 내어 줄까.

우리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분들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문득 작년에 읽었던 소설이 생각났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집필하신 윤정모 작가님은 1946년생이시다. 부산 동래 온천장에서 성장하셨다. 첫 장편 [무늬져 부는 바람]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고 민족 현실과 분단 상황, 사회 대립과 갈등 문제를 다뤄온 사회파 베스트셀러 작가이시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대표작으로 1982년 [에미 이름은 조쎈삐였다]는 한국 문학 사상 최초로 위안부 진상을 소설에 그린 작품이다. -출처 다산책방-


위안부………..

세 글자를 적고 나서도 한참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글자만 보아도 듣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에 고개가 숙여진다.

윤정모 작가님이 쓰신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제목을 통해 엄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어느 정도 대략적인 개념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주인공 배문하에게 전해진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서 일제 강점기의 강제 징집된 학도병의 이야기들이 시작되고 소설이 끝나기 얼마 전까지는 계속 학도병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중반쯤 넘어가면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니라 학도병의 이야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상과 달라 살짝 당황은 되었지만 몰랐던 학도병들의 처참한 상황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간 학도병들의 삶은 알려진 바가 많이 없어 아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배문하 아버지의 일기가 끝날 때쯤 엄마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들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 듣지 않으려 하지만 엄마는 아들로서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로서 취재원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였다.


엄마의 이 선택은 정말 지혜로웠다고 생각된다.

소설가의 입장으로 듣는다면 아들로 듣는 것보다는 감정의 개입이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하지만 막상 아들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위안부…. 그분들의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의 엄마가 위안부였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래도 공감이 조금이라도 가능한 동성인 딸도 아니고 이성인 아들이 엄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얼마나 혼란스러우면서도 고통이었을지

부모는 선택할 수가 없다.

생명의 잉태와 동시에 맺어진 인연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인연에 대한 원망은 자랄 수 있다.

엄마의 아픈 과거를 함께 아파하면서도 왜 하필 나의 엄마가 위안부인가 하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소설가 배문하가 엄마로부터 듣게 된 학도병과 위안부의 이야기로 이렇게 끝이 나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싶을 때 페이지를 넘기면 뒷장부터 생생한 위안부 할머님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소설에 비해도 적지 않은 분량의 위안부 할머님들 실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거였구나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그 모든 곳에 위안부 엄마가 있었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작가님이 소설 속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할머님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하고자 했던 사실들 이것 말고는 그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글로 접하는 할머님들의 실상은 생각보다도 더 처참하고 고통스러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역사이지만 사실에 기반한 내용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앞으로 만들어질 우리의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등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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