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교에서 포럼이 있다고 초청을 받아 캠퍼스를 찾았다.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다. 마지막으로 캠퍼스를 방문했던 것이 큰아이가 초등학생, 둘째가 유치원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니 그것 역시 10여 년 전이다. 오랜만에 찾은 캠퍼스는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활기와 생기가 넘쳐 보였다. 마침 포럼이 내 전공인 사회학 수업이 주로 있던 건물에서 열려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포럼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탄생과 여성의 역할’이었다. 동창회 주최로 열려 꽤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메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강연을 들으니 기대감도 컸고 함께 간 친구와도 즐겁게 참여했다. 대한민국의 탄생 역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함께 민족사적 측면뿐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강연자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여대에서 열린 포럼답게 이런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도 강조되었다. 인간으로서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수백 년의 역사를 지나 오늘날 여성이 이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선구자적 역할을 한 여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럼이 끝난 후 캠퍼스를 거닐었다. 11월 둘째 주 캠퍼스는 늦가을의 정취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 여름의 극심한 무더위 때문에 단풍이 예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캠퍼스의 단풍은 젊은 학생들의 에너지 덕분인지 여전히 아름답고 찬란했다. 정문 앞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든 잎들로 마치 물감이라도 뿌려 놓은 듯 화려했다. 짧아진 가을이 아쉬웠는데 캠퍼스의 풍경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과 함께 하니 문득 레빈슨(Danial Levinson)의 4계절론이 떠오른다. 성인발달이론가인 그는 인생을 네 계절에 빚대어 설명했다. 즉 인생을 성인 이전 시기, 성인 전기, 성인 중기(중년기) 그리고 성인 후기(노년기)로 나누고 각각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 환절기가 있듯이 인생 역시 각 시기를 평가하고 종결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전환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인생의 시기에는 각각 주요 과업이 있는데 성인 초기는 가족으로부터 독립, 결혼과 직업 선택 등을 통해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성인 중기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족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새로운 인생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업이 있다. 성인 후기는 은퇴와 함께 신체적 노화와 변화에 대비하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태도로 삶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여름, 가을,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각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르다. 각각의 계절이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듯 인생의 각 시기도 다른 빛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지금 나는 성인 중기, 인생의 가을을 살고 있다. 늦가을의 캠퍼스가 그 자체로 아름다왔듯이 나 역시 내 인생의 가을을 더욱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