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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에 대한 생각

by 호호아줌마

결혼에 대한 인식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딸이 남자친구와 1박 2일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두 딸을 둔 나도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같은 이야기는 하기 싫지만, 그렇다고 쿨하게 ‘그래! 다녀와’ 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연애와 결혼, 출산 순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 언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까? 요즘 동거 비율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이는 결혼 제도에 대한 부담감과 미래의 불안정 속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혼인 없이도 동거가 가능하다고 답했고, 혼인 없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2014년 22.4%에서 2024년 37.2%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5명에 불과한 상황과 연결해서 볼 때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프랑스 PACS 제도


프랑스에서 지낼 때 불어 선생님에게 ‘PACS(시민연대계약, Pacte Civil de Solidarité)’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1988년에 도입된 PACS는 결혼하지 않은 커플에게 일부 법적 권리과 책임을 부여하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정으로, 원래는 동성 커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PACS로 결합된 커플 중 96% 이상이 이성 커플이라고 한다. PACS는 결혼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해지가 쉬워 결혼만큼의 부담을 줄이면서 서로를 더 잘 알아가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프랑스의 국가 통계 기관인 INSEE(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études économiques)가 발표한 2023년 인구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PACS로 결합된 커플의 수가 점차 늘어나 이제는 결혼 건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실제 지난 20년 동안 매년 체결되는 PACS 결합 수는 2002년 대비 약 2만5천건에서 2022년 약 2십1만건으로 8배나 증가하였다. PACS가 프랑스 출산율이 1.6 수준으로 유지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INSEE의 2023 통계 보고서 일부


설령 PACS가 출산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고려할 점이 많다. 프랑스의 PACS 제도는 기존 결혼제도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유교적 가치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받아들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비혼 동거에 대한 인식은 성별과 세대에 따라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40대 이하 응답자 중 60% 이상이 긍정적이었지만, 60대 이상에서는 25%만이 긍정적으로 답했으며, 20대 여성의 경우 80%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남성은 46%에 그쳤다. 이처럼 인식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제도적 인정이 관계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혼의 제도적 의미가 약화되면 출산율 감소나 가족 구조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동거인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도 응급 상황에서 법적 대리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지금의 법체제가 현실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수용


연애-결혼-출산이라는 고정된 생애모델을 여전히 표준으로 삼으려 이것만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출산율 하락을 고려할 때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에 대한 제도적 수용과 문화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 역시 동거를 가족 구성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비혼 동거에 대한 단순한 수용을 넘어 관계의 안정성과 자녀의 권리 보호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비혼 동거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문화적, 제도적 차원의 실질적 지원과 함께 건강한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PACS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떨까? 찬성에 한 표를 던지겠지만 실제 내 딸이 비혼 동거를 한다고 한다면 그때 마음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는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나 역시 '라떼는 말이야...' 라며 결혼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아는 만큼 그리고 고민한 만큼 딸과 함께 보다 현명한 결정을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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