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구조화된 일상을 만드는 것
우리나라 노인들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하루 중 필수활동(수면과 식사 등)과 의무활동(일, 가사노동 등)을 제외한 여가 시간이 약 7~8시간에 달한다. 하지만 91.4%의 노인들이 그 시간을 주중에 TV 시청으로 보낸다. 한편 65-74세 대상자들에게 노후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 물었더니 평균 68.2%가 여행과 취미생활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일상의 시간들이 채워질까? 위 조사는 노인들의 생활시간에 대한 조사로 현재와 미래의 이상적인 여가 활용 방식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즉 활동적이고 의미 있는 노후 생활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정적인 활동(TV 시청 등)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유 중에는 경제적 부담이나 신체적 제약 같은 어쩔 수 없는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여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거나, 혹은 오랜 시간 익숙해진 생활 패턴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등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요즘 나에게도 깊이 와닿는다. 나이가 들고 은퇴 후의 모습을 그려가면서 점점 많아지는 여유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독립하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졌고, 앞으로 그러한 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일상을 이전과 다르게 새롭게 구조화하는 일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중심에 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취미가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취미로 채워지는 여가 시간과 이를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일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취미를 갖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 싶으면서도 요즘 나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취미의 중요성은 알겠는데 무엇이 나의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취미가 아니라 순전히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 지금까지 해오면서 가장 즐겁게 했던 일은 무엇인가?
둘째, 현재 하고 있는 것 중에 즐겁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늘 직업으로서 일에 대한 생각만 하고 살아왔다.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삶에서 먹고사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고, 혹시라도 여유 시간이 생기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날씨에 맞춰 움직이거나 그냥 되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딱히 취미라는 것이 인생에 중요하다 생각되지 않았기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그 어떤 것도 특별히 좋아서 하는 것이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즐거워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남은 인생을 나로서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내 취미는 어디에?
핸드폰을 꺼내 지난 몇 년간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런데 일상의 모습보다는 단순히 ‘새로웠기’ 때문에 찍은 장소, 경험에 대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취미 추천’을 검색어로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혹시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취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소소한 100가지 취미’를 소개하는 영상부터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취미’, ‘노년에 비용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취미’ 등 다양한 영상들이 올려져 있었다. 좋아하는 취미를 찾는데 도움 된다고 하면서 ‘비주얼 씽킹을 활용한 취미 탐색법’ 강의도 있었다. 취미를 찾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느 한 가지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열정이 부럽다. 나는 늘 해야 하는 일을 했고 하던 대로 해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어떻게 찾고 시작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나를 중심에 두고 들여다봐야겠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말이다.
나를 탐색하는 과정
나를 중심에 두고 마인드 맵을 그려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서 즐거웠지만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있을 것이다. 습관처럼 해 왔기에 즐거움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또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것들도 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목록으로 정리해 봐야겠다.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이 과정이 결국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될 것이며, 나아가 미래의 일상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거라 믿는다.
우선 조금 더 익숙한 것들, 예를 들어 서울둘레길을 활용한 트래킹이나 도서관 탐방, 필라테스부터 시작해 볼까? 또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일본어 배우기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악기 연주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어떤 취미든 상관없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시작된 여정, 나는 앞으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기대된다.
[참고]
통계청(2020). 2019년 생활시간조사
통계청(2018). 2018 고령자 통계
통계청(2021). 2021년 사회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