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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그리운 스승님을 떠올리며

by 호호아줌마

스승님의 기일인 지난 6월, 대학원 동문들과 함께 선생님의 산소를 찾았다. 작년 이맘때는 억수같이 비가 내려 하늘조차도 우리의 슬픔을 아는가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올해는 다행히 쾌적하게 좋은 날이었다. 마음속 슬픔도 날씨처럼 조금씩 가라앉아 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여전히 그리움을 지우진 못했지만 내 안에서 그분의 기억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듯하다.


벌써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년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3년 전 2월 즈음이었다. 참으로 갑작스러웠다. 그로부터 두어 달 전 총장으로 계시던 대학으로 선생님을 방문하였을 때 환하게 웃으시며 학교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시고 학교의 미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셨었다. 식사 자리에서는 버섯전골을 사주시며 건강과 인생, 그리고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를 나누었었다. 다음에는 꼭 제가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선생님은 떠나셨다. 대학에서 퇴임하신 지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내게 누군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하면 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을 때 말없이 흘리던 눈물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타국에 있어 1주기 기념식에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작년 2주기에 이어 올해에도 안동에 있는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 꼭 함께 하고 싶었다.


안동으로 가는 길은 서울에서 3시간 반정도 걸렸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굽어진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 선생님이 잠드신 자리에 닿았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묘소 앞에 서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가 미국 워싱턴 DC에 머무르고 있을 당시 WHO 방문차 며칠간 머무신 적이 있었다. 그때 WHO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메릴랜드 대학까지 동행할 기회를 주셔서 덕분에 보고 배우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하루는 시간을 내어 근처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았는데 선생님이 따뜻한 말씀들을 해주셔서 긴 운전 시간 동안 참으로 편하게 오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구경을 마치고 선생님을 집으로 모시고 왔는데 남편이 준비한 양고기와 된장찌개를 어찌나 좋아해 주시고 맛있게 드셔주시는지 흐뭇해했던 생각도 난다. 일말의 권위 없이 그저 인간적인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해 주셨다. 역시 내가 가장 존경할 만한 분의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따뜻한 분이셨다. 학자와 연구자,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이셨지만 항상 제자보다 먼저 전화하셔서 안부를 물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해서 질문하곤 하셨다. 마지막으로 펴내신 책은 ‘서애 유성룡’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한 인생 십계명이었다. 후학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남기신 책이었다.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셨던 그런 분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자취를 돌아보며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동물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여 어떤 사람들은 이름을 위해 권력이나 자리에 욕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름’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이름은 나의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남았고, 그 울림은 내가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방향을 비춰주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진정한 멘토는 이런 분 아닐까. 말보다 삶으로 가르치고, 지위보다 따뜻함으로 남는 사람. 선생님이 나의 멘토로 남아 계시기에 나는 오늘도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나의 길을 다듬어본다.


KakaoTalk_20250728_084036226.jpg 선생님의 정년퇴임을 맞이하여 제자들이 발간한 수필집 중 저자가 쓴 글 '4가지 일화'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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