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의 춤

by JVitae

학교를 다닐 때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학교에서는 몇 개 안 되는 평가기준으로 나를 줄 세웠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하냐, 예쁘고 잘 생겼냐, 리더십이 있냐
대학교 때는 잘 노냐, 예쁘고 잘 생겼냐, 성적을 잘 받냐
박사 때는 논문을 몇 개 썼냐, 어느 학술지에 실었냐, 지도 교수가 누구냐

얼마 전 들어가 본 인스타그램에서
박사 시절 동기였던 엘렌이 오랜만에 올린 춤 동영상을 봤다
몇 년 전부터 대여섯 명 친구들과 함께 춤을 배우는 모양이다
한 곡을 완성하면 친구들과 의상을 맞춰 입고 대열을 갖춰 서서 춤을 춘다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SNS에 올린다
춤 장르가 다양하다, 케이 팝도 있고, 부채춤도 있다
엘렌이 행복해 보이는 것이 참 좋다

박사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논문을 쓰는 박사생은 둘로 나뉜다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자신의 길을 척척 개척해 가는 자와 제자리를 맴돌며 헤매이는 자
엘렌과 나는 헤매이는 자였다
일렬로 세워진 줄 끝에 움츠려 있었다
써낸 논문의 수와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등급에 의해서만 평가되던 대학원 시절에는

엘렌이 춤에 열정이 있는 줄 그땐 상상도 못 했다
그도 내가 이렇게 꼬질꼬질한 애엄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어 글쓰기를 좋아하며 살 줄은 몰랐을 테지
엘렌은 졸업 후 메타에 취직해 리서치 사이언티스트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우리 동기 남자 중 하나랑 결혼도 하고 열심히 춤도 추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아주 잘 사는 것 같다

우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었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모르고
다 똑같은 줄 알고
삶을 사는데 한 가지 길 밖에 없는 줄 알고
우린 망한 줄 알고

지금의 나는 또 어떤 몇 개 안 되는 기준으로 나를 재고 있을까
어디에 갇혀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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