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일상
휴대폰에 'shower&dinnerPrep' 알람이 울린다. 벌써 4라고? 이제 일을 끝내고 씻고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넋 놓고 자꾸 유투브에 빠져들지 않았더라면 일을 충분히 끝냈을 텐데. 후회막심이다. 오늘 머리 감기를 포기할까. 어제 감았는데. 그럼 30분은 더 일할 수 있잖아.
4시 30분. 일은 여전히 못 끝냈지만 이젠 진짜 일어나야 한다. 애들이 오면 요리를 할 수 없다. 오늘은 밥이랑 불고기를 할 거다. 불고기 하려고 사다 놓은 간 고기랑 버섯이 조금만 더 두면 상할 것 같다.
아무거나 잘 먹던 포동이가 요즘 들어 맨밥밖에는 안 먹는다. 어떻게든 쌀밥 안에 탄수화물 말고 다른 영양소를 집어넣어야 한다. 애들이 저절로 잘 자라는 게 아니다. 그 입속에 탄수화물, 단백질, 채소를 골고루 집어넣으려고 부모들이 매일매일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를 알면.. 그러는 나도 엄마한테 전화드린 지가 일주일이 다 돼가긴 하지.
밥은 어젯밤부터 불려둔 파로 한 컵이랑 흰쌀 한 컵을 넣을 거다. 원래 렌틸도 1/4컵을 더하는데, 아침에 애들 데이케어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사 온다는 걸 까먹고 못 사 온 게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렌틸을 넣는 날엔 렌틸은 따로 삶아뒀다가 밥이 다 되면 밥에 섞어 넣는다. 그러는 편이 색도 예쁘고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미국 쌀에는 비소가 많다고 해서 쌀은 되도록 여러 번 씻는 편이다. 그러고도 찝찝해서 물에 5~10분을 불렸다가 불린 물을 버려버린다. 그렇게 하면 비소가 많이 빠져나간단다. 남편이 밥을 할 때가 있는데 그 밥이 애들이 먹을 밥이면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말이 많지만 최선을 다해 꿀꺽 삼킨다. 이렇게 공을 들여 밥을 안쳐놓으면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애들이 맨밥만 먹겠대도 난 두렵지 않다.
늑장을 부리다 일어난 데다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해 가며 요리하다 보니 밥밖에 안 했는데 벌써 5시다. 남편이 애들을 픽업하러 나갈 시간이다. "자기야, 이제 5시야!" 뭐 하나 봤더니 양치 중이다. 하루 종일 뭐 하고 있다가 꼭 애들 데리러 나갈 때가 되면 양치를 한다. 맘에 안 드는 티를 숨기지 않는다. "다 괜찮다~" 넉살을 피우며 남편이 나간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요리를 끝내려면 서둘러야 한다.
불고기에 쓸 간 고기는 일단 약한 불에 올려놓고 천천히 익히면서 키친타월로 기름을 빼낸다. 간 고기 1파운드에 키친타월 4장 정도면 된다. 그렇게 익힌 고기는 한 김 식혀 도마에서 더 잘게 다진다. 고기가 덩어리 지면 안 그래도 천천히 먹는 핑크 같은 경우에는 불고기 한입에 5분씩 씹어먹는다. 프라이팬에 다진 파, 마늘, 양파와 참기름, 아보카도유를 넣고 볶다가 좀 익으면 다진 고기를 넣고 이연복 셰프가 알려준 만능 간장소스를 넣는다. 버섯도 잘라 넣는데 버섯은 다행히 애들이 좋아해서 잘게 자르지 않아도 된다.
재료들은 웬만하면 다 유기농이다. 남편은 종종 얘들은 어려서부터 무슨 호강인지 모르겠다고 툴툴댄다. 자기는 어려서 스팸이 최고의 반찬인 줄 알고 살았다며. 우리 땐 많이들 그랬지, 뭐.
5시 반. 밖에서 '삐이삐이'하며 차가 후진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랑 애들이 돌아온 거다. 한 시간을 부엌에서 서성거렸는데 밥이랑 불고기 말고는 한 게 없다. 애들은 불고기비빔밥을 준다지만 어른들은 뭘 먹나. 남편은 얼려둔 육개장을 좀 녹여줘야겠다. 나는 남편이랑 애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긁어모아 먹으면 얼추 양이 맞다. 그래도 배고프면 애들 재우고 나서 간식이나 좀 하고.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포동이를 안고 들어오면서 말한다. "핑크는 엄마가 차에서 데리고 들어와 줬으면 좋겠대!"
오냐, 알았다. 지금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