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by JVitae

계기


친정부모님께서 시애틀에 와 계시던 8월의 일이다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서는 남편을 보며 엄마가 말씀하셨다

유서방은 로켓이야, 운동을 나가나 싶으면 벌써 집으로 돌아오거든

남편이 운동을 너무 짧게 하고 온다는 말뜻이었다

책 잡히고 다니는 것도 싫고,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남편에게 요즘 밖에서 어떤 운동을 하냐 물었다

집 근처를 한 바퀴 달리고 온단다

쉬지 않고 달리면 15분 정도 되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운동이 꽤 된단다

운동이 거창하면 꾸준히 하기 힘든데 15분이니 부담이 없고

15분이지만 매일 달리니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진단다

와닿는 설명이었다

회사일 하랴 애 키우랴 집안일하랴 매일 잘 시간도 모자란 우리에게 딱 맞는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번 해볼까


시작


낮에 나가 뛰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평일 낮에 나가려면 회사일을 하는 중간에 나가야 했다

뛰는 건 15분이라도 앞뒤 준비, 정리하는 시간이 있으므로 30분은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주말 낮에는 나가서 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뛰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6시 20분 알람을 맞췄다

평소 8시까지 자고도 힘겹게 일어나던 나였다

낮에 가뿐히 뛰고 오던 루트가 몸이 아직 잠에서 안 깬 아침에는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아침, 홀로 흠뻑 땀을 흘리고 오는 성취감만큼은 최고였다


부상


무리를 했다

평생 뛰어본 적 없는 이가 무턱대고 뛰기 시작했던 것이 무리

아침 일찍 일어나본 적 없는 이가 워밍업도 없이 욕심 내 달리고자 했던 것도 무리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를 뒤져 무릎 통증에 도움이 된다는 운동들을 찾아서 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러닝을 시작했음을 눈치챈 유튜브는 곧 온갖 러닝 관련 영상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꽤 많은 걸 배웠다

달리기 전후로 준비 및 정리 운동을 반드시 해야 하더라

보강운동이라는 것도 해야 하더라

러닝 자세를 바로 하는 것이 부상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더라

바른 러닝 자세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더라


변화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이 쉬워졌다

7시가 넘으면 깨어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8시까지 자라고 소리 지르는 일이 없어졌다

미지근하게 데운 우유와 사과와 삶은 달걀을 준비해 놓고 아이들이 깨기를 기다리는 엄마가 됐다

밤 11시면 잠이 쏟아져 침대에 눕는다

몸무게가 1킬로그램 줄었다

배가 조금 들어갔다

휴대폰을 넣고 달릴 수 있는 허리벤트와 야광 조끼 등 러닝 용품 몇 가지를 구입했다

오른쪽 무릎은 여전히 아프다

지지난 주말 애들과 놀다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는데 성치 않은 발목과 무릎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소원


아침 달리기를 그만두기보다 무릎이 나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다

중독이 된 모양이다

어떤 면에 그토록 매료됐는지 생각해 봤다

나만이 지배하는 고요한 아침 시간

한바탕 뛰고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의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

건강해지는 신체와 함께 건강해지는 정신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 자신의 성장

그래서 고집을 부린다

인생 하루이틀 살 것도 아닌데 몇 주 쉬었다가 다 나으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이면 기어이 집을 나가 한바퀴 뛰고 오고 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다 해줄 수가 없다

그저 내 자신이 꼭 그러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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