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 부모님은 건넌방 한 칸에 사글세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돈 벌러 도시로 온 젊은 부부에게 말이지요. 우리는 세입자와 마당, 화장실을 같이 쓰면서 가족같이 지냈습니다.
그 부부는 열심히 전세금을 모아 부엌이 딸려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부모님은 우리들이 크면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아이들 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그 젊은 부부가 이사 가는 날,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시고 함께 이사를 도와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임대인은 집의 일부를 전세로 놓아서 무이자로 돈을 융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임대인도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었습니다) 임차인은 목돈을 맡겨두고(저축성 예금) 일정 기간 주거를 보장받았습니다. 목돈(전세금)은 향후 집을 살 수 있는 종잣돈이었습니다.
금융시스템과 정책지원
불과 몇 년 사이에 “전세자금 대출” 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많은 임차인이 은행 돈을 빌려서 전세를 얻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 기관(HUG 주택도시 보증 공사 등)에서 보증을 서주는 덕분입니다. 정부의 정책지원과 법적 토대가 마련되자 은행에서는 <전세자금 대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전세대출은 최소 2년간 안정적으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효자상품입니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홍보자료
정책지원과 금융시스템 덕분에 전세금을 대신 빌려주고(전세자금 대출) 전세금을 대신 갚아주는(전세보증금 반환 보험) 시대가 됐습니다. 이렇게 금융시스템이 발달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신용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전세보증보험을 이용하면 임대인이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사고? 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사고 시에 보험회사에서 임차인에게서 전세금 받을 권리(반환채권)를 인수하고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지급하고 임대인에게 청구합니다.
최근 2년간 전세자금 대출 활용이 많아지고 전세가가 올라가니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전세제도가 금융시스템에 편입되면서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 관리 및 규제가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가 되었습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가세
최근 전세 시장의 급격한 변화
최근 직장 이동이나 자녀 교육의 목적으로 이사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본인 집을 전세 주고 전세를 얻는 경우도 흔해졌습니다. 구도심 주변에 신도시가 생기면 인프라가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수요도 생깁니다. 대규모 단지가 입주하면 인근 전세가가 급격히 내려가고 주변 구도심에서 많은 세대가 이주해서 인구를 채웁니다. 그리고 2년 4년후에는 전세가격이 다시 회복됩니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사람들은 좀 더 큰집이 필요했습니다. 임차인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더 크고 좋은 집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갭 투자를 하거나 두 번째 주택을 전세를 끼고 사려고 합니다. 이때도 전세금이 높을수록 매수하기 쉽습니다. 때마침 임대차 2법시행으로 가격을 미리 올리려는 유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 참여자 요구가 맞아서 전세가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임차인은 금리가 낮아서 대출이자를 감당할만하고, 임대인도 시세가 높은 타 지역에서 전세를 구해야 하기에 전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전세가는 집값의 받침돌 역할을 합니다. 금리가 낮았던 2020~2021년에 전세가와 집값이 동반 상승하면서 부동산 상승세가 가팔랐습니다.
2022년에는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어 주택 투자심리가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금리가 올라가니 돈이 귀해졌습니다. 이제는 전세대출을 갚으려고 큰집에서 작은 집으로 줄여서 이사합니다. 대출받기가 부담스러워서 아예 이사를 가지 않습니다. 긴축정책으로 인하여 돈이 돌지 않으니 전세수요가 감소하고 전세보증금 시세가 떨어졌습니다.
일부 지역의 빌라,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경우, 전세가보다 매매가가 낮은 '깡통 전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풀려진 전세가에 갭투자한 집이 부동산 침체기에 들어서면 생기는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