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본에서 유학할 때 일본인들을 보며 느낀 점과 영국에서 살면서 영국인들을 보며 느낀 점을 정확히 딱뭐라고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 뭔가 닮은 점이 있다.
그 점이 바로 ‘겉과 속마음이 다른 부분’-다테마에(建前. 겉마음)혼네(本音. 속마음)인데, 이 부분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졸업논문으로도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영국에서의 유학시절,
하루는 항상 같이 다니던 일본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같은 역에 내리는 유럽 친구와 친하게 되었다고 했다. 둘 다 영어를 배우고 있는 터라 서로 완벽하게 의사소통은 잘 안 되었지만, 그동안 같은 기차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꽤 친해졌고 먼저 집으로 들어가면서 그 친구한테 울 집에도 언제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초인종이 울리길래 나가 보니 정말로 그 친구가 놀러를 왔다는 거였다.
난 “그랬구나, 반가웠겠네?”라고 대답을 했더니 그 일본 친구는 꽤 놀라면서 말했다.
“갑자기 와서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어”라고.
난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했다며? 그래서 그 친구는 너네 집에 놀러 간 거고 뭐가 잘못된 거야?”
그랬더니 그 일본 친구가 했던 대답은 당시 20대였던 나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 내가 언제든지 놀러를 오라고 하는 건 그냥 인사말이었지, 진짜 올 줄은 몰랐어”
이 말이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조금 이해는 가지만, 그때는 나도 어려서 그 말이 너무나 황당하고 매정하게만 들렸고 그 당시 그 친구도 나도 어린 나이였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 초대하고 싶으면 언제 몇 시에 우리 집에 놀러 올 수 있겠냐고 묻는다고 했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은 그냥 인사일 뿐이라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모습과 사고들은 영국인들한테서도 참 많이 볼 수 있다.
항상 “Hi, darling!” 하면서 누군가와 꽤 친해진 거 같지만 그다음 만남에서는 다시 제로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을 영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종종 느끼게 된다.
뭐라 할까..
뭔가 한국인 같은 정이 없는 관계,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인사말들 때문에 헷갈리고 혼동을 주는 의사 표현들을 종종 사용한다.
그래서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믿고 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재기 때문에 가끔 실망하게 되고 오해가 커질 때도 있다.
한국인들은 하고 싶은 말의 120프로를 하고 영국인이나 일본인들은 70프로만 말을 하는 거 같다. 이건 내심을 감추는 영국인과 마음을 솔직하게 밝히는 한국인의 문화 차이인 것 같다.
한국에서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말은 엄청난 욕이다.
반면 내가 유학했던 일본에서는 훌륭한 처세술이되는 거 같다. 그 이유는‘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마음)’를 두 가지 마음으로 별도로 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마음을 따로 두는 건 여기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뭔가 속과 겉이 다른 듯한 모습들. 이 두 가지 마음을 따로 두는 부분을 꼭 나쁘다고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속마음’이 ‘겉마음’과 진정으로 같기를 바라는 한국인에게는 어쩌면 좀 차갑고 정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거 같다.
한국인들은 친해지면 간과 쓸개까지 빼어 준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영국인이나 일본인은 꽤 친해진 것 같은데도 끝까지 거리를 두는 모습이 있다. 이런 부분은 나 역시 25년을 한국에서 살아온지라 뼛속까지 한국인의 사고가 배여 버린것인지, 여기 영국에서 20년을 살아도 이런 사고방식은 아직 적응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20년을 살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진정한, 쓸개까지 빼 줄 것 같은 친구?를 사귀는 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보면 사실 그네들끼리도 딱히 그런 친구는 없는 것 같다. 두 가지의 마음을 적당히 따로 다루면서 그것이 나를 지키는 처세술이 될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또 매정하고 정이 없다고 느껴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의식화되고 겉으로 드러난 겉마음은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남들이 그렇게 봐주기를 원하는 영역이다. 반면 속마음은 자기만이 아는 마음이며 감정이나 감각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었을지도 모르는 무의식의 마음에도 가깝다.
그래서 이 속마음은 타인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마음일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 속마음을 끊임없이 컨트롤하고 좋은 모습의 겉마음만이 비추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향에 따라 때로는 이러한 무의식의 속마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때로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한층 한층 더 가깝게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속마음을 감추는 것으로 본인이 더 절제되어 보이고 남들에게 친절하고 좋은 모습만 비치어지기를 원한다면 그 또한 개인적인 성향이라 옳다 그렇다고 판단할 수도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영국인들은 말을 골라한다. 남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일들에는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돌려 말할 때도 많다.
이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두 마음'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잘만 적응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이해돼 마음이 푸근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Not bad(나쁘지 않네요)
영국인- (별로 안 좋네요)
다른 나라 사람들 -(베스트는 아니지만 꽤 괜찮아요)
・ but, I'd like to suggest...(이렇게 제안드리고 싶습니다만.... )
영국인-(좀 제대로 하세요. 혹은 좀 더 준비하고 다시 오세요)
다른 나라 사람들-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서 검토해주었지만, 이 사람은 또 이런 식으로 하고 제안하고 싶어 하는구나.)
・ I'm a little disappointed.(조금 실망스럽습니다만....)
영국인 - (난 이미 꽤 불쾌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별로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은 실망했나...)
・ That's a very interesting story.(매우 흥미 있는 얘기군요)
영국인- (이런 넌센스 한 얘기가 어디 있니!)
다른 나라 사람들- (내 얘기가정말 재미있구나!)
・ Please come to dinner.(꼭 저녁식사에 와주십시오)
영국인- (별로 초대하고 싶진 않지만, 예의상)
다른 나라 사람들- (조만간 나를 초대하겠구나)
・Why don't we go over other options?( 다른 선택사항도 검토하는 게 어떨까요)
영국인- (그 아이디어는 때려치우는 게 낫겠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영국인들이 아직 결정을 못 내렸나 보네)
•나한테 뭔가를 보여주길래 It's all right (괜찮네. 좋네)라고 말하면...
영국인-(별로 안 좋네)
다른 나라 사람들 -(괜찮네. 좋네)
*영국 친구가 뭔가 보여 준 것이 진짜 괜찮으면 That's great. Well done. 정도로 해 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인 모두가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부분은 꼭 어느 나라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개인마다 성향과 성격마다 다 다르기도할 것이다. 단지 많은 일본인과 영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는 좀 더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들이 있는 것 같다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을 말했을 뿐.
어떤 부분이 좋다 안 좋다를 넘어서서 사람마다 이러한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너무 그 부분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