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헹구지는 않아도 드라이는 꼭? 다른 설거지 문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다른 설거지 방식

by ziniO

헹구지는 않아도 드라이는 꼭? 다른 설거지 문화와 방식



뭔가를 씻고 헹구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에도 나라마다 이렇게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충격은 영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아 지인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였다.


처음에 영국의 설거지 방식에 정말 충격을 받았다가 아직까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익숙해 지거나 따라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설거지 방식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설거지를 하면은 더러운 그릇을 세재로 닦고 세재가 남지 않도록 아주 잘 헹군 다음에 깨끗하게 잘 말리거나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서 제자리에 둔다. 이건 반문 반박할 수 없는 기본 상식이 아닐까. 설거지 방식을 구글링해도 이렇게 나오건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설거지를 이렇게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일본에 유학하며 살았을 때 일본 가족도 그러했고 홍콩에 갔을 때 홍콩 가족들도 그러했다.


그런데 영국에 와서 영국 로컬 교회에서 티 타임을 가지고 설거지를 도와줬을 때도 그렇고 영국 현지인 가정에서 초대를 받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도와주었을 때도 그러했다.

-달랐다.-

사실 충격이었고 정말 한 마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내가 그동안 알던 기본 설거지 방식을 다 깨고 있었다.

먼저 더러운 접시들을 물이 고인 싱크대나 아니면 싱크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의 통 안에 세재와 함께 그릇과 접시들을 한참 담가 둔다. 그러면 상상이 가는가. 스파게티 소스나 기름 등, 온갖 그릇에 달라붙어 있던 소스들이 다 그 물속에서 세재와 함께 버블 목욕을 하는 상태가 된다. 거기까지는 좋다. 훨씬 쉽게 잘 닦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데 놀라움을 그 다음부터이다. 솔이나 스펀지로 거품 속 더러운 접시들을 대강 닦은 뒤 물에서 스윽 건져낸다. 그러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거품이 묻어있는 그릇을 받아서 그대로 마른행주로 닦는다.

안 헹군다!

정말 잘 헹구지 않고 그대로 행주로 닦기만 한다. 그럼 그릇에 묻혀 있던 거품과 세재 속 물기들이 그 행주와 함께 사라진다.

보기엔 깨끗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그리고 그 같은 행주로 다시 다음 그릇들을 닦고 또 닦는다. 도대체 왜 헹구지 않는 거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닦으면 아주 깨끗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뽀득뽀득 해 질 때까지 헹구는 부분이 꼭 필요하다고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대접받고 설거지를 해야 할 타이밍이 되면 보통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해도 적당히 선을 넘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손님으로써의 배려는 “제가 옆에서 닦아드릴게요”라고 하면 적당히 무난한 것 같다. 그리고 설거지를 한 뒤 헹구지는 않아도 그 세제와 물기를 닦는 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설거지의 마무리는 헹굼이 아니라 -드라이-이다.


신발을 신고 침실까지 들어오는 문화와 함께 이 설거지 문화만은 몇십 년을 이 나라에서 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난 이러한 설거지 방식을 나름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해 접근의 생각정리는 이 정도다.

우리가 손이 더러울 때 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물티슈로 닦으면 깨끗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굳이 헹구지 않아도 더러운 얼굴도 닦고 더러운 손도 물이 묻어있는 티슈로 닦으면 깨끗해 지니까… 설거지도 마른행주로 깨끗이 닦으면 세재도 더러운 물도 다 닦여진다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물이 있는데 왜 굳이 왜 헹구지 않는 거야???


이 헹구지 않는 설거지 문화와 비슷한 부분이 또 있다.


로맨틱한 서구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이쁜 여배우가 촛불을 켜 놓고 로맨틱한 음악을 들으며 와인 한 잔과 함께 거품목욕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목욕을 끝낸 여배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거품 속에서 나와서 자기 몸집만큼 큰 타월을 몸에 감으면서 그대로 나온다. 그 큰 타월로 몸을 닦고 머리를 드라이하고 이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아무렇지 않게 봤던 이쁜 영화의 장면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렇다. 린스를 하지 않았다. 분명히 헹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가 결혼을 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여기서 태어나 자란 울 남편도 버블 목욕을 가끔 했는데 그 영화 장면이랑 똑같았다. 거품이 더덕더덕 묻어있을 건데 이불만 한 큰 타월을 감으면서 나왔다.


여기 설거지 문화랑 아주 딱 맞게 오버랩이 되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로 난 목욕도 샤워처럼 린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리고 호텔에서만 있을 법한 그 몸집만 한 큰 타월들은 딱 닦기 좋은 사이즈로 가위로 싹둑싹둑 다 잘라서 가장자리를 재봉틀로 박아 버렸다. 도저히 매번 그 어마어마한 세탁물의 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몸집만한 큰 타월을 그리워는 하지만 이제는 모든 가족이 작은 세면용 타월?(한국에서 쓰고 있는 타월 사이즈는 얼굴 닦는 용도라고 한참 동안 큰 타월을 그리워했다는)을 잘도 쓰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큰 수건을 매번 세탁하지 않아도 된단다. 라디에이터(영국 난방)에 널어두고 말려서 또 몇 번이고 사용한다고 한다. 모든 의문과 해결점은 사라졌지만 이제 남편도 적응을 했다. 작은 사이즈 타올로 몸과 머리를 다 닦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닦은 타월은 아무리 나 자신만 닦는다 해도 세탁해 버리자..

우리 집은 이렇게 아시안 가족화? 가 되었다.


난 헹구지 않는 설거지도 거품목욕도 용납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가끔 혼자 질문하게 된다.


나도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다면 똑같았을까.


어느 문화에든 옳다 그르다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마치 파를 사면 묻지도 않고 파란 윗부분 다 잘라버리고 아래 하얀 부분만 주던 그 난감함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야채 아저씨와 오갔던 허망했던 나의 눈빛처럼. -


하지만 그 문화에서 자라서 거기에 익숙해져 간다는 건...

참 지독히 바꿀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무언의 합의로 이루어져 익숙한 관습이 되어 버린 무언의 약속들을 누가 먼저 그랬냐는 듯 서로 잘도 지켜나가는 모습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자란 환경에서 나는 음식들의 영양을 섭취하 듯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이 환경의 영향과 지배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관습과 문화들을 세상 정답인 양 전부인 줄 알고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부분이 나도 모르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한참 지나도 변치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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