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niO Sep 23. 2022

굳이 오늘 같은 날도 감사해야 할까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여느 때와 똑같이 하루가 시작된다. 사실 여느 때? 보단 좀 안 좋은 일들이 많았다. 자동차에서 또 소리가 나서 점검을 받아야 했고 다 자란 아이들과 사소한 다툼으로 신경질도 났다. 어젯밤에는 잘 산책하다가 마지막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서 울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 똥을 먹어버렸다. 설마.. 하면서 입에 냄새를 맡아보니 이런...

 "니 나이가 몇 살인데 이제 사람 나이로는 아줌마인데 아직 길 가다가 남의 똥을 어떻게 먹어! 네가 똥개야?"

 발이랑 입을 씻기며 잔소리, 치카치카를 해 주면서 또 잔소리를  가득 퍼부었지만 머리는 갸우뚱, 눈은 말똥말똥.  


어쨌든 아주 평범한 날이라기보다는 어제 하루는  딱히 감사할 일이 없는 하루였다.


둘째를 학교에 보내고 아침 일찍 커피 한잔을 하러 왔다.

집으로 가면 집안일과 청소 아님 침대로 들어갈 게 뻔하니 오늘 아침에는 곧바로 동네 맥도널드(이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곳은 이곳뿐이라)에 와서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생각해 본다.  사실 오자마자 인터넷에서 칼럼 하나를 읽었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보상 중추가 자극되어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글을 읽으며 난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본다.  '이 눔의 오지랖, 이제 좀 무시하자 모른 척 하자'라고 다짐한 날이 많았다면 난 이타적인 사람일까? 아니 상관이 없을까?

모르겠다.

생각을 접고 다시 오늘 하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집으로 가면 당장 이것저것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창 밖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는 감사하는 삶을 살자"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기준은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 당장, 아니 앞으로 몇 년간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은 거의 대부분 돈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일들이 90퍼센트이다.

그 리스트를 적으면 끝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돈이 있다고 해서 100프로 행복과 연결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 돈 많은 사람들을 다 행복해야 할 건데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돈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아무리 채워도 60프로라고 한다. 그 나머지 40프로는 내가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항상 불평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 나뉜다.


2020년 봄,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터지고 영국은 락다운에 들어갔다. 여름에 한국에 가려고 미리 끊어놓고 있었던 비행기 티켓은 자동으로 취소 처리가 되어버리고 전 세계는 멈추어 버렸다.  아직도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영국은 락다운에 들어갔다. 한국은 모든 가게들과 커피숍, 레스토랑들까지 닫은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영국은 정말 다 닫아버렸다. 그것도 몇 주가 아닌 몇 달을.  테스코 같은 아주 큰 슈퍼마켓과 병원, 약국만 빼놓고 정말 다 닫아버렸다.  그 당시 미용실을 못 가서 집에서 다들 미용을 하고 그것도 못 하면 그냥 남자들은 머리를 묶고 다녀야 할 판이었다.  레스토랑은 물론 커피숍 상점 등 다 닫아버리고 생계를 위해 아주 불가피한 곳만 열어버리니 온 나라가 죽어버린 듯했다. 학교도 몇 달씩 닫아버리니 아이들은 집에만 있게 되고 회사도 전부 자택 근무로 바뀌고 나니 거리에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그게 몇 달씩 가니 우울감이 몰려왔다.  마스크 좀 제대로 잘 쓰고 한국처럼 좀 하면 안 될까라는 불평도 몰려왔다.


어느 날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중 한 목사님께서 감사 리스트를 적어보라고 제안을 하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감사 리스트를 적어 보았다.

강제로 30가지를 적어보기로 하고 종이 한 장씩 나눠 가지고 조용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한 가지도 없을 듯하다가 슬슬 채워지는 리스트를 보니 놀라웠다.

1. 거리에 차가 없으니 안 막혀 감사하다

2. 가족들과 항상 따로 였는데 삼시 세 끼를 함께 하니 감사하다(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가 아니었음 평생 그때처럼 다 함께 지낼 시간이 앞으로는 없을 것 같다)

3. 정신없이 살다가 쉴 수 있으니 감사하다

4.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니 감사하다

5. 다 함께 넷플릭스를 실컷 보게 되니 감사하다

6. 돈 쓸데가 없으니 감사하다....

.

.

30. 꽃 나무, 평소에 잘 올려다보지 못했던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에 감사를 느끼게 되는 기회가 더 많음을 감사드린다.... 등...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장 많은 요리를 함께 해 먹었고 집에서 다들 서로 머리를 깎아주면서 까르르 웃기도 하며 집에서 파나 상추 깻잎 같은 것도 기르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했었다.


관점만 약간 돌리니 불평 투성이었던 상황들이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고 아이들도 남편도 마찬가지 었던 것 같다.


그 후 며칠간? 우리 가족은 참 행복했다. 적어도 서로에게 웃어주면서 친절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락다운이 풀리면서 다른 개인 커피숍들과 레스토랑은 닫았지만  맥도널드가 문을 연다는 기사를 보고 차를 타고 달려갔던 때가 생각난다. 맥도널드 하나만 열어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하던지.

그 주말에는 이케아가 문을 연다길래 기쁜 마음에 달려간 사람들이 아주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뉴스 기사로까지 나왔으니..


렇듯 행복은 맘을 먹기 나름이다.


맥도널드에 앉아서 글을 쓰면서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한잔 더 시킬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 또한 행복하다.

적어도 재작년처럼 락다운은 아니니. 마스크를 벗고 이렇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도 오랜만에 감사 리스트를 적어 봐야겠다.

30가지는 힘들 것 같고 10가지만...

이전 01화 고독한 이방인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