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캐니 밸리/ 전지영/ 창비 2023가을호
쾌락을 위한 인간의 몸부림
전지영의 [언캐니 밸리]를 읽기 시작했을 때 화자의 외적 상황이 몹시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불쾌한 골짜기가 여기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에 대한 의미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글이 주는 힘이 느껴져 단숨에 읽어나갔다. 읽고 나서 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그래, 이런 사람들도 있었지. 생각해보면 관점의 차이야. 모두가 자기 세계에 속하지 않은 상대의 세계를, 그 자체를 불쾌한 골짜기로 볼 수 있겠다. 닮은 듯 닮지 않고, 닮지 않은 어느 부분을 간헐적으로만, 아마도 그때는 자기의 깊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런 생각을 은밀하게 드러내도 괜찮을 잉여적 시공간이 제공될 수 있을 때겠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의 의미를 찾아보면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해당 존재가 인간과 많이 닮아있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로봇 같은 존재를 볼 때 인간과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이 올라가다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 사실, ‘uncanny’라는 단어는 놀랍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즉 미묘하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다. 이런 불쾌한, 혹은 불편한(?) 느낌은 1906년 독일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가 사용한 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살아 있지 않아 보이는 존재가 사실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뜻한다고 한다. 인간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대상에 대한 호감도가 급하강했다가 급상승한 구간을 그래프로 그리면 깊은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불쾌한 골짜기’ 이론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은 로봇, 광대, 좀비, 딥페이크 등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화자는 왜소증을 가진 140cm의 야간택시 운전사이자 스케치 작가다. 낡은 상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변변하게 돈을 벌 수 없어 야간택시 운전을 하는 화자는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청한동까지 손님을 데려다준다. 그런데, 그 손님들은 청한동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다. 사실, 세상이 빈, 부 이렇게 두 곳으로 나뉜 것은 아니다. 극빈과 극부 사이에 수많은 다른 세계들이 존재한다. 극빈과 극부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이질감’을 더 느끼면서 동시에 ‘동질감’을 갈구하는 것이다.
화자는 극부의 세계, 즉 청한동으로 손님을 태워주다가 스케치 대상이 되었던 ‘당신’을 알게 되고 그녀의 염산 테러로 인한 죽음을 알게 되고, 청한동에 속한 노부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극부’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전해 들을 때, 놀라워하기도 하고, 못 믿기도 하고,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하며 호기심을 느끼기도 한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사실, 재벌, 연예인 사건 사고를 몇 개만 검색해봐도 성, 마약, 폭력 등의 단어가 쉽게 연결된다. 물론, 동시에 권력, 명예, 명품, 미술 등도 연결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권력, 명예, 명품, 미술은 포장된 것이고 그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가면 성, 마약, 폭력이 깊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만족’을 위해 피라미드의 밑 어딘가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니즈’를 채워주고 소정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다가 개같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청한동에 속한 그들도 겉으로 ‘품위’있게 사라지지만, 속으로 ‘개’같이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들 중 피라미드 밑 어딘가에 속한 사람들은 청한동에 속한 그들과 닮으려고 부단히 애쓴다는 사실을. 그런 ‘불편한 골짜기’의 감정을 느끼면서 느끼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청한동에 속한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그 순간에 잉여적 시공간이 주어졌을 때, 환상으로나마 ‘그들이 완전히 속하고 싶진 않지만, 가끔 낭만처럼, 피라미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양식, 혹은 겉모습을 따라 해 보고 싶은 욕망’을 기괴하게 실현하는 것은 아닐까.
* 질문: 당신은 경제적 피라미드의 어디쯤 속하고 어떤 ‘불편한 골짜기’를 경험하고 싶나요?
‘언캐니 밸리’가 주는 제목에서처럼 우리는 그런 세계에 대해 호감과 비호감의 변동(fluctuation)의 어느 시점에 있고, 동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드시 그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기보다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지요.
조심스럽지만 은밀하고도 충격적으로 이루어진 고 이 00 회장의 성매매 사건, 버닝썬 사건의 중심에 있던 여럿 연예인들,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정, 재계 인사들,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 비행. 이런 일들은 그들이 먹고 살기 바쁜 삶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지요. 그렇지만, 단언컨대, 그들은 그럴 여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여유 속에서 이유와 핑계를 대고 반대편의 ‘언캐니 밸리’를 향유하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언캐니 밸리]의 화자가 말한 것처럼, 결핍은 자연스러움을 더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갈망하는데, 결핍이 그렇지요. 표면적 결핍이 없으면 정신적 결핍을 굳이 찾아내고, 그리고, 그 결핍을 아닌 척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괴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언캐니 밸리’를 인지한 후 소멸시키는 ‘쾌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겠지요.
어떤가요?
당신은 어떤 결핍을 느껴 보았나요?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어떤 행동, 혹은 어떤 제스처를 해보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