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나를 찾아서: 캐나다
이미 오래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더 멀리 아빠를 떠나고 싶었고, 나를 버리고 싶었고, 방황하는 청춘이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빠와 연락을 끊는지 오래다. 대학교 3학년 가을, 그 바람은 나를 몹시도 흔들었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움츠려 있었고, 나의 주제를 생각하느라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했고,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사랑도 외면했다. 성장기 아빠와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나는 무엇을 해도 실패한 삶인 것만 같았다. 인정받지 못하고, 축복받을 수 없는 마치, 저주받은 삶인 것처럼.
나는 도저히 한국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나는 밤에 전화를 자주 했는데, 울면서 국민학교만 나온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고통스러워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수나는 걸어가다가 넘어진 일이 있었다. 그때 다리를 다쳤고 아빠는 수나가 손이 그렇게 되었을 때처럼 제때 병원을 데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병신은 학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수나를 온통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수나에게 더 어려운 사람도 다양하게 잘살고 있다, 너도 할 수 있다, 네가 시작만 한다면 언니가 도와주겠다며 위로하고 설득했다. 새‘엄마’와 살고 있던 막내 어진이는 자신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별로 없다며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알려줬고,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고 말해줬다. 언니는 일찍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살고 있었고, 자기 삶을 추스르기조차 힘들어했다. 엄마와도 연락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 하나만으로도 삶이 버거웠는데, 흩어진 형제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도망치고 싶었다. 멀리, 아주 멀리. 아빠와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나의 모든 불행과 고통이 아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피우고, 엄마와 이혼하고, 자식을 버리고, 새로 낳은 자식들만 겨우 추스르는, 그리고 옛‘자식’을 키우지 않았으면서 옛‘자식’에게는 바라기만 하는, 지금 내가 열여덟에 집을 쫓겨 나와 힘겹게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생물학적으로만 아빠인,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생각조차 힘겹게 느껴지게 했던 그런 아빠!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할 수 없었나 보다.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고 두려웠다. 나에게 다가오는 이성들을 벌레 보듯 내칠 수밖에 없었고, 이성과 깊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설렘을 좋아하고 사랑을 갈구하던 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형벌과도 같았다. 이제는 바꿔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나를 찾아야만 했다. 어쩌면 진짜 나를 새로 만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휴학하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았다. 작년에 벼룩시장을 보고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도 했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벼룩시장을 가져와 눈이 빨개지도록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벼룩시장은 현실적인 세상을 볼 수 있고, 아르바이트를 제공해 주는 보석 같은 존재였다. YBM 파견교사, 보습학원 강사, 과외, 신림동 고시촌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주방용 칼 세트 판매, 논현동 영어교재 출판사 편집. 하루 잠은 3~4시간 자고 눈을 뜨면 여기, 눈을 뜨면 저기, 분주하고 정신없이 일했고 드디어 종로에 있는 탑항공 여행사를 찾아갔다.
캐나다 밴쿠버! 서점에서 미리 조사한 1, 2월 평균 기온이 영상인 곳, 그리고 영어를 쓰는 곳. 언제나 가슴까지 시리도록 아프게 했던 겨울은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시기였으므로.
차도 다니지 않는 아주 작은 시골에서 이제 대전으로, 부산으로, 서울로, 그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는 광활한 곳, 버너비 언덕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가져다줄 정도로 타원형의 긴 선이 그려졌고,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과 사뭇 다른 유형들이었다. 밴쿠버 센트럴 도서관에서 만난 음악가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SFU(Simon Fraser University)의 졸업식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내가 지낼 하숙집의 일종을 구할 수 있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렌트한 집주인 셜린은 친정엄마와 여섯 살 아들 딜런과 함께 사는 싱글마더였고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인부들에게 파는 케이터링 일을 했다. 전형적인 코케이션인 이 호스트 가족은 내가 영어 공부를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사교적인 할머니와 말을 배우고 있는 유치원생 아이는 동양에서 온 긴 검정 머리의 젊은 아가씨에게 관심이 많았고,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원했다. 셜린과 이혼한 딜런의 아빠 랄프는 1주에 한 번씩 딜런을 데리고 가서 함께 주말을 보냈다. 랄프는 셜린과 오래된 친구처럼 지냈고, 어린 딜런도 어른들로 인해 처한 자신의 상황을 특별히 ‘비참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밴쿠버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밴쿠버행 비행기에서 만났던 중국계 캐나다인 사업가, 그가 인사시켜 준 동생, 사촌 부부, ESL 선생님, 한국에서 스키복 공장을 운영하는 아저씨 부부, 셜린의 아랫집에서 일하면서 수의사 공부했던 켈리,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캐나다로 건너온 한국인 친구. 그 외에도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즐거웠고 좋았다. 시골에서 점차 도시로, 도시로 나왔지만, 제법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기 캐나다에서 여전히 어리석었고 모든 것이 새롭기만 느껴졌다. 하지만 저녁이 되고 숙소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머릿속에서 도망치고, 고뇌하고,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밴쿠버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 중, ESL 선생님이었던 로라는 젊은 시절 세계 여행을 많이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현명하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로라에게 나의 고민을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내가 방황하고 있다는 것, 아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두려워서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했다.
“우리는 누구나 방황을 해. 그 방황은 인생에서 꼭 필요하기도 하고. 그런데 말이야, 해달. 방황의 시간이 길다고, 힘들다고 해서 더 성장하거나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방황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아. 어차피 지금 해결 방법을 모른다면, 직접 부딪치면서 찾아가는 거야. 더 이상 도망치면서 너를 스스로 갉아먹지 마, 해달.”
그렇게 한국에서 멀리, 멀리 도망쳐 방황하던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Turning Point)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레 몹시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아직 원하는 답도 못 찾았지만,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여기서 이제, 방황을 끝내고 나에게 문제를 던져준 한국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찾아보기로 했다. 나를 찾아서 왔던 그날, 밴쿠버의 겨울은 하늘에서 눈송이가 흩날렸지만,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도 눈송이도 따뜻했다. 나는 처음으로 따뜻한 겨울을 만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설렘을 안고 탑승했다.
- 에필로그:
아마도 어느 순간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는데, 나는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였고,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캐나다로 나를 찾아서 도망쳤지만, 비록 정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나는 캐나다에서 만난 어른 친구의 조언으로 문제의 출발점인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방황하는 어린 친구들이 너무 힘겨워할 때 담담하게 토닥여주면서 간절한 마음을 건네준다.
“너무 힘들면 방황해도 괜찮아. 그런데 아이야, 너무 아프지 않게, 조금만, 짧게 방황하기를. 어차피 지금 해결 방법이 없다면, 직접 부딪치면서 찾아가는 거야. 용기를 내렴. 넌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