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슬쩍 꺼내 본- 대학 도전기

14. 대학 도전기

by 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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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 될 즈음, 담임선생님은 내가 봉제공장을 그만두고 근처 피혁(가죽) 회사의 사환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사환으로 일하는 것은 꽤 재미있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의 역할은 주로 중앙우체국의 회사 사서함 관리, 법원등기 심부름 등 회사와 관련된 기관들을 다니는 일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나가지 않기도 하고 그런 날은 회사 전산실에서 언니들이 주는 과자를 먹으면서 언니들이 하는 얘기들을 가만히 들었다. 언니들은 늘 바쁘게 일했는데, 일본어로 능숙하게 전화를 받고, 서류를 작성했다.


나는 총무과 소속이었는데, 50대로 보였던 총무과 이사님은 내가 일을 꽤 잘한다며 고등학교 졸업하면 정식으로 사원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고, 나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되고 총무과 이사님께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사님은 조용히 나에게 흰색 봉투 하나를 주셨다. 그 안에는 만 원짜리 40장이 들어있었다. 그동안 모았던 돈과 이사님이 주신 이 돈으로 일하지 않아도 몇 달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독서실을 등록해서 지냈는데, 야간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낮에는 거의 텅텅 빈 독서실에서 의자를 세 개 정도 붙여 그 위에서 쪼그리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몸 상태는 급격히 더 나빠져서 늘 현기증을 달고 살았지만, 체력이 허락할 때는 내 자리에서 안간힘을 쓰고 공부했다. 어느 밤 학교 끝나고 버스를 타러 나왔다가 새로 생긴 제법 좋아 보이는 영수 학원을 발견했다. 나는 나와 같이 공부하기로 한 친구와 나이가 많은 언니 두 명을 데리고 무턱대고 학원 문을 열었다.

“저, 저희는 여기 뒤쪽에 있는 야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인데요. 공부를 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시간엔 다닐 수 있는 학원도 없고,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한 시간씩이라도 학교 끝나고 수업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간절한 눈빛이 통해서였을까, 이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여고생이 기특해서였을까. 그 학원 부원장이었던 영어 선생님은 다른 수학 선생님까지 설득해서 우리의 수업을 해주시기로 했다. 그것도 한 과목 값으로 두 과목을. 영어 선생님은 수강료를 받지 않고, 우리 수강료는 모두 수학 선생님에게 준 것이었다. 같이 간 친구와 언니들은 나에게 무척 고마워했고, 나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뜨거운 힘이 생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중에 부원장님은 내가 같이 온 친구들과 레벨 차이가 크게 나서 함께 공부하기는 힘드니 혼자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결국 그 학원은 두 달 정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나는 학원 수업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했고, ‘넌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부원장님의 격려로 계속해서 독학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대입 시험을 준비하고, 신문에 나온 대학 광고를 보고 몇 곳을 지원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야간 전문대에 합격했고, 언니 한 명도 전문대에 들어갔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영어 교육과에 합격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며 재수를 권하셨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하고 지쳐있던 나는 이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사실, 입시에 실패하면 짐을 싸서 산속으로 들어가 작가가 될 생각이었다. 이제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은 등록금이었다.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은 거의 다 썼고, 200여만 원의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새‘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잘 지내셨어요? 저, 해달이요. 저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등록금이 부족해서요. 혹시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나요?”

새‘엄마’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 니, 잘했다. 그때, 진짜로 나갈지 몰랐는데, 니도 참. 어쨌든 내가 니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든 졸업시켜 줄라 했는데. 미안타. 내 아빠 몰래 들어놓은 적금 깨서 100만 원 보내 주꾸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앞으로는 다시는 전화하지 말고 니 알아서 잘 살아라.”


전화하기를 잘했다. 그냥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역시 새‘엄마’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새‘엄마’도 고1의 나이 아이를 별것 아닌 일로 쫓아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새‘엄마’가 보내준 100만 원과 내가 가지고 있던 돈, 그리고 교회에서 받은 장학금 50만 원, 이렇게 모은 돈으로 첫 등록금을 무사히 내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 에필로그: 나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도 길었다. 늘 더욱 혹독한 시련은 겨울에 찾아왔다.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시골로 내쳐지고, 도망치고, 쫓겨나고, 명동과 을지로의 칼바람을 맞으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았던 그런 일들은 늘 겨울에 있었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그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언제나 따뜻함이 어디서 인지 시작되어 스며들었고, 그러면 곧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용기를 내고, 내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가 힘겨워 손을 내밀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손을 잡아 줬고, 위로해 줬고, 응원해 줬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조금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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