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열여덟, 알을 깨기 위해서
중3이 되고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고입 연합고사를 준비했다. 원서를 쓰는 시기가 다가오자 선생님은 아빠를 부르셨고, 아빠는 나에게 상업고등학교를 들어가라고 했다. 상고 졸업 후 얼른 동생들의 학비를 벌어오라고 했다. 선생님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고, 나는 결국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여상에 지원했다. 연합고사에서는 총 한 문제를 틀려 고등학교 입학식 때 선서를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공부를 잘하는 류는 이 집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열일곱 살 나는 빛을 잃은 아이처럼 날이 갈수록 시름시름 앓았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고, 병원에서는 영양결핍 진단을 받았다. 그즈음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있었는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문장이 큰 충격 또는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내가 꼭 해내야만 할 숙제 또는 운명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같으면 새‘엄마’의 한 소리에 그냥 잘못했다고 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새‘엄마’의 ‘나가’라는 말에 그냥 나와버렸다. 그 겨울,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새‘엄마’는 내가 수건을 똑바로 놓지 않았다는 이유로-물론 내가 한 것이 아닌, 새‘엄마’의 딸 수진이가 한 것이었지만- 나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다. 짐도 제대로 못 챙긴 채 집을 나왔고, 딱히 갈 곳도 생각나지 않았다. 공중전화로 나의 옛‘엄마’에게 사정을 얘기했지만, 엄마는 다시 들어가라는 말만 했다.
집을 나와 갈 곳이 없던 나는 고1 마지막 2주 정도를 담임선생님 집에서 지냈다. 갈 곳 없는 딱한 나의 사정을 들으신 정치경제 선생님은 부인과 심각하게 의논하시고, 나에게 대학까지 보내줄 테니 선생님의 아기를 돌보며 함께 지내자고 제안하셨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스스로’ 알을 깨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려면, 알을 깨고 나오려면,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거절했다.
“선생님, 남들이 직선으로 목표까지 갈 동안, 저는 돌아 돌아 먼 길로 가야 하겠지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선생님. 저, 괜찮아요. 늦게 가도 괜찮고, 어쩌면 돌아가도 제가 먼저 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것을 더 많이 배울 수도 있고, 저는 그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받아주시겠다고 결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래도 저, 그냥, 혼자 해볼게요.”
그렇게 언니가 준 5만 원을 들고 혼자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쟌피엘을 찾아갔다. 쟌피엘은 남자 양복을 만드는 회사였고, 나는 양복의 어깨 시접 부분을 처리하는 공정에 배치되었다. 쪽가위질로 양쪽 어깨 시접을 자르고 내 키보다 조금 컸던 프레스 기계로 그 시접 부분을 쾅 누르는 작업을 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옷감이 산더미처럼 쌓였으므로 작업장에서는 쉴 새 없이 옆 라인에서 던져주는 옷을 처리해야 했다. 공장 안에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대중음악 소리가 크게 나왔는데, 서로 무슨 말을 하려면 큰소리로 고함쳐야만 들렸다. 아주 나중에 그렇게 크게 가요를 틀어놓는 것이 공장 노동자들이 생각 없이 일하도록, 의사소통하지 못하도록, 작업을 쉴 새 없이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학교도 갈 수 있고, 조금이지만 월급도 받고, 잠잘 곳도 있다는 것은 집에서 내쳐진 고아나 다름없던 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에 가는 일은 절대, 절대 만만치 않았다.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7시 기상.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장에서 손과 발이 퉁퉁 붓도록 일한 후, 버스를 타고 야간 고등학교에 도착해서 밤 9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공장 안에 있는 기숙사에 돌아오면 밤 10시. 다른 언니들처럼 힘들게 번 돈으로 옷과 맛있는 걸 사 먹고 싶은 마음도 가끔 있었지만, 나는 막연히 그냥 이대로 공장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월급을 받아 가리봉동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찾아 코볼, 포트란을 등록했다.
기숙사 통금시간은 12시였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허겁지겁 11시 40분까지 공장 정문을 통과해 어둑어둑한 회사 앞마당을 지나 호실당 18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 방까지 달렸다. 내일의 작업을 위해 모두 잠을 자고 있어서 당연히 방 불은 켤 수 없었다.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공부할 책을 주섬주섬 챙겨 2층에 있던 명목상 독서실이라는 작은 창고로 이동했다.
기다란 선반 하나가 벽에 붙어있어 책상으로 쓸 수 있었고, 폭이 좁은 의자 두세 개가 있었다. 그 시간엔 모두 자고 있으므로 나 혼자 불을 켜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혼자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다가 [일이랑 월이]-비밀 일기장-에게 시를 쓰기도 하고,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얼굴은 점점 누렇게 누렇게 뜨고 있었고, 현기증이 자주 있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달리는 말의 고삐를 잠깐이라도 내려놓으면 영원히 놓칠 것만 같았다.
‘임해달! 초라해도, 너는 갇혀있던 세상을 깨고 나왔어.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지만, 똑바로 봐. 여기도 이미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잖아. 다 별의별 딱한 사정이 있다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는 가야.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자’
- 에필로그:
인문계도 아니고, 상업계도 아니고, 이젠 산업체 야간 학교. 나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나는 이제 서울 바닥에서 아무것도 아닌 어느 공순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말했다. 정치경제 선생님 집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했다. 정치경제 선생님께 호기롭게 말한 것을, 또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정신력으로 버틴 것 같다.
그런 어린 마음으로 세상에 무턱대고 맞서려 했다. 되돌아갈 수 없었고, 멈출 수 없었고, 힘겹지만 그저 앞으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세상을 너무 몰랐고,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힘겹고 고단했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그 시절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열여덟 해달아, 수고했고 잘했어. 알을 깨기 위해서 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