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 아이는 완득이를 들고 있었다
그 아이는 [완득이]를 들고 있었다.
“앉아봐, J야”
“네.”
J는 커다란 테이블 한쪽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빵과 견과류 세트를 전달해준다는 것은 전달하는 처지에서도, 받는 처지에서도 어색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J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싶었다. 담임선생님을 통해 전달받은 내용은 최근 J는 집에서 거의 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서 먹는 점심이 유일한데, 속이 안 좋아 그나마 잘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계속 굶다가 갑자기 점심을 많이 잘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위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고, 어떤 음식물이 들어올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완득이]구나.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니?”
[완득이]는 J에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좋은 구실이 되었다.
“네,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오늘부터 읽으려고요.”
“그렇구나. 이 책 나도 읽었는데. 재미있어. 감동도 있고.”
J가 이 책을 잘 읽고 생각을, 생각을 잘, 잘하면 좋겠는데. 아니, 그래야 하는데.
[완득이] -김려령
완득이는 가난하고 공부는 못하지만 싸움을 잘하는 열일곱 소년이다. 아버지는 키가 매우 작고 카바레에서 춤을 가르친다.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으로 집을 떠났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고, 누구도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 싫었던 완득이는 ‘똥주’ 선생님을 만나면서 이제 분노를 표출하는 법을 배우고, 어머니를 만나면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알아간다. 책에서 완득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아빠가 곁에서 끝까지 완득이를 지지해 줬고, 엄마가 나타나 완득이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픔이, 큰 아픔이 있다. 그런데 J는 아빠도 엄마도 없다. 아직 J앞에 완전히 나타나지도 않았다. J는 무심한 삼촌과 둘이 산다. '똥주' 같은 선생님도 없다. 아직, J에게 [완득이]가 준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J야, 이거 가져가. 빵이랑 간식이야. 출출할 때 먹어."
나는 J에게 쇼핑백을 건넸다.
"괜찮아요, 선생님. 집에 밥 있어요."
J는 나의 눈을 피해 다른 곳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알아. 그런데, 출출할 때 먹으라고. 그리고 이건 너 집중력 향상에 좋은 거야. 그래서, 학교에서 졸지 말고 눈 초롱초롱 수업에 집중하라고 주는 거야. 요즘 많이 엎드려 있다던데. 맞지?"
J는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J는 쇼핑백을 받아 들고 인사를 하고 교무실 문을 나갔다.
J는 밥을 잘 안 먹고 다닌다. 삼촌은 J를 돌봐줄 여력이 되지 않았고, J 스스로 자신을 챙겨야 했다. 학교 점심시간에 먹는 식사가 하루 식사의 다였다. 그런데, 자꾸 굶다 보니 점심으로 먹는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점점 점심밥도 잘 못 먹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말라갔다. 예민해지고, 눈의 초점은 흐릿하고, 가끔 엎드려 있던 아이를 선생님들이 깨우면 순간 눈빛은 사나워졌다. 점점 부정적인 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와버렸고, 선생님들은 J가 그저 버릇없고 무기력한 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내가 J를 만난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는 동아리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다양한 동아리 중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 수업에 참여한다. 나는 아이들이 직접 손으로 하는 공예 활동을 통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취지로 '공예반'을 조직했다. 그날의 만들기가 다 끝나면 아이들에게 각자의 작품을 들게 하고 사진을 찍어줬다. 처음 사진을 찍던 날, J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찍지 않겠다며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두 번째 동아리 시간에는 목공예를 했는데, J는 평소 무기력한 모습과 달리 땀까지 흘리며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나는 슬쩍 다가가 J가 재능이 있다며 멋지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래서였을까. J는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사진이 너무 멋져서 담임선생님 통해서 전달해 주겠다고 하자 J는 갑자기 눈빛이 바뀌며 강력하게 거부했다.
"싫어요. 보내지 마세요. 그럼 또 엄마나 아빠한테 보낸단 말이에요."
분노의 눈빛이었다. 예전에 어떤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그 상담 선생님이 자신과 했던 얘기를 부모님께 전달했고, J는 그 이후로 입을 닫았다고 했다. J에게 '엄마, 아빠는 부모님이니까, 너를 사랑하니까' 이런 변명은 아무 도움도 안 되고 의미도 없었다.
"알았어. 아무에게도 안 보내고 그냥 J 네 휴대폰으로만 보내줄게."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수업을 하면서 J는 점점 웃음이 늘었고,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신나게 참여했다. 웃으면서 뽐내면서 사진을 찍었고, 그다음 수업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재료를 분배하거나 친구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수업 도우미 역할까지 해주었다. J와 나는 꽤 친해졌고, J는 나에게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J가 손재주가 좋고 감각도 있으니 괜찮은 디자인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며칠 뒤 J는 [완득이]를 반납하러 간다고 하면서 교무실에 들렀다.
"선생님, 책 좋았어요."
J가 약간 어색하게 말을 꺼냈지만, 용기를 내서 들어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얼른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래, 잠깐 앉아봐. 지난번 빵하고 잘 먹고 있니?"
"네, 맛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완득이] 다 읽었구나. 마음에 울림이 좀 있는 책이지?"
"네."
J는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더는 자세하게 표현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나는 J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J야, 선생님도, 완득이도, 너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픔이 있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태어나 보니 그런 거야. 하필 왜 나한테, 왜 나만 이렇게 힘든 환경인 거야. 이렇게 원망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래서 뭐. 원망한 그다음은? 계속 원망만 하고 있으면 몸만 어른이 되고, 마음은 원망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는 거야. 다행히 완득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그건 다행이야. 물론 앞으로 또 넘어지고 다치고 피도 날 거야. 그럼 어때. 누구나 넘어져. 넘어지고 일어나고 피가 나면 밴드 붙이고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거야."
J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공부 좀 조금 더 열심히 하려고요."
"그래,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지 않기! 이것부터 지켜보자. 선생님이 네가 계속해서 잘하고 있는지 다른 선생님들께 다 물어볼 거야."
"네!"
"그래, 잘 가. J 너도 너의 길을 잘 가. 그러면 돼. 힘들면 도움도 받고, 그래도 주인공은 너니까. 네가 일어나서 가야 해. 알았지?!"
"네! 선생님!"
처음 봤을 때 J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J의 지금 뒷모습이 나는 좋았다. 괜스레 눈물이 났지만.
- 에필로그: 청춘의 아픔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의 물리적 환경은 떠나기 전과 비교해서 그렇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 뿐.
대학 졸업 후 다양한 일을 하다가 채워지지 않은 배움이 고파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한다. 그렇게 학교에서 만난 인연들은 성인이 되어 간간이 미소 짓게 하는 소식들을 전하고, 그러면 나는 기분이 좋다. 학교에 오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