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칼은 의사와 요리사가 들면 사람을 살리고 먹이는 활인(活人)의 칼이 되고
강도가 들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殺人)의 칼이 됩니다.
칼과 관련된 두 가지 한자 성어 포정해우와 차도살인을 떠올려 봅니다.
요리사가 소의 뼈와 살을 잘 발라냈던 포정해우(庖丁解牛)와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
포정해우는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포정은 19년 동안 살과 뼈를 발라냈지만 칼날은 막 간 것과 같았습니다.
고수(高手)의 칼은 어디에 어떤 칼을 쓸지 잘 알고,
뼈 살 힘줄을 분별하여 한치의 오차 없이 칼을 잘 조심스럽게 다루어 사용합니다.
초짜나 하수(下手)는 아무렇게 찌르고 함부로 사용하여 소를 잡을 때마다 칼을 바꿉니다.
차도살인은 남의 칼로 사람을 죽이고 칼 주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나쁜데 칼 주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더 고약한 짓을 한 것입니다.
칼을 상징하거나 칼과 반대편이 있는 직업은 검사와 언론인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언론과 만나 포정의 칼이 아니라 하수의 칼이 되어
차도살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검찰의 권한은 국민들이 위임해 준 것입니다.
검찰은 디케의 날카로운 칼을 정의를 세우는데 써야 합니다.
기소와 수사를 할 때 포정의 칼날처럼 예리하게 사용하여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억울한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야 합니다.
뉴스타파가 펴낸 <윤석열과 검찰개혁>이라는 책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난 2년 간 검찰 주의자 윤석열이 벌인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와
그 부산물들은 윤 전 총장이 대권후보로 가기 위한 검찰쿠데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이를 부추긴 것은 보수야권과 다수 언론들이었다.”
검사의 칼과 언론의 붓이 만나 사람을 죽인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수(下手)의 칼은 아무 곳이나 찔러 상처를 주고
붓은 각박하고 잔인하게 온갖 비리인 것처럼 떠벌리고
천지분간을 못하며 휩쓸리는 뭇사람 입김 속에
온 가족이 도륙되는 잔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맹자에 “칼날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울림이 큰 말입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난중일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처했던 절망적 상황을 단적으로 말한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는 상황이 되풀이됩니다.
왕정시대 군주의 어리석은 판단은 훌륭한 사람을 죽게 했고
민주공화정 시대에 시민의 권한을 위임한 잘못된 권력은
무고한 사람을 죽게 했습니다.
<칼의 노래> 마지막처럼 삶의 절망을 마무리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을 떠올립니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세상이 캄캄한 절망의 어둠일 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작은 희망의 촛불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에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밤에 읊조린 시(閑山島夜吟)를 옮겨 적습니다.
맑은 바다에 가을빛 저물어가고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나네
근심 가득 한 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들고
새벽 달빛이 활과 칼을 비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