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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Mar 03. 2024

#19. 스타워즈 : 스승과 제자_2

교육 잡설(雜說)

#19. 스타워즈 : 스승과 제자_2      


    서양의 스승은 종교적 스승과 일반적 스승으로 다소 구분됩니다. 이에 반해 동양의 스승은 서양에 비해 통합적 스승을 지향합니다. 종교적 스승은 영적이며 삶과 죽음 전반을 다룹니다. 그리스 철학 이래로 플라톤은 형이상학적인 스승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적인 삶에서의 스승일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마케도니아, 로마로 이어지는 군대의 전술, 전기는 교관과 훈련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개인의 전투기술도 중요하지만 야전에서의 대회전이 이루어지면 집단 전투 기술이 승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단일 전술에 대해서 아마 가장 많은 연구가들이 평생을 매달렸던 팔랑크스(Phalanx)는 고된 훈련과 정신적 무장, 숙련 선임병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팔랑크스

    나중 일이지만 스페인의 테르시오 대형은 머스킷 총병과 창병을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방진을 형성합니다. 그리스의 팔랑크스를 무너트린 알렉산더의 기병처럼 보병의 오랜 적은 기병이었습니다.      

알렉산더의 기병

    정면과 측면, 후방으로 짓쳐 돌격하는 기병의 돌파를 저지하기 위한 보병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입니다. 중세 이래의 기사의 훈련은 보병보다 더 가혹합니다. 30kg이 넘는 갑옷을 입고 중무장을 하며 말을 타고 각종 대형을 펼치며 전투를 한다는 것은 육체에 대한 극단적인 단련과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 용기로 영혼을 무장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혼의 안식과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교황과 주교 등 종교인을 포함해서 그들에게 전투기술을 전수하고 전술 전기를 연마시킬 스승이 필요했습니다. 한편으로 수도사와 연금술사는 폐쇄적인 상황(직업적, 사회적)에서 그들의 지혜를 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중세 연금술사

    그들의 연구는 당대에 끝낼 수 없는 장기간의 인내와 끊임없는 도전, 세대를 뛰어넘는 노력의 결집이 필요했습니다. 당연히 근대교육 개념이 부족했던 그들은 도제식 교육을 시행합니다. 물론 수도사는 연금술사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체계적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의 일상은 기도와 노동으로 채워졌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사들은 대부분 농사 등을 직접 수행했습니다.      

    한편으로 수많은 종교서적, 문학, 예술 등을 필사하고 공부합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만들어진 책을 보유한 수도원들은 유럽 곳곳에서 교육을 위한 학교와 도서관을 운영했으며 수도원들은 교육 중심지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했으며 12세기 말엽부터는 그중 일부가 대학(universitas)으로 진화합니다.     

 

    수도사는 계급과 연령과 관계없이 성직자나 평신도 등도 모두 참여가능했습니다. 귀족들은 가문을 상속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수도원을 헌납하기도 했으며 어린 자녀들을 수도원에 보내는 자녀 봉헌의 전통이 있기도 했습니다. 평민들의 경우에는 자녀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거나 교육이나 사회 진출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수도원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노년층이 입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현재의 종교시설, 학교, 고아원, 요양원 등의 역할을 수행했고 농사를 짓기 위한 자연과학, 종교철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 공동체 유지를 위한 의학 등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근대를 넘어가며 사회적 성공을 위해 성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동양 불교의 법당과 스님들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주어만 제외하면 수도사인지 승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입니다.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적과 흑(1830)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성공하기 위해 가정교사를 하고 시장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릅니다. 염문설이 퍼지자 신학교로 도피해서 유창한 라틴어 실력을 바탕으로 유능한 성직자가 됩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미사에 참례한 불륜녀를 권총으로 쏩니다.      

스탕달과 적과 흑 표지

    소설은 당시의 불안한 사회상과 젊은 개인의 성공과 방황, 종교와 도덕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서 근대에 수도원이 신학교로 전환되고 여전히 평민 엘리트에게 성직자가 되는 길은 중요한 성공의 방법이었다는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든지 수도사, 성직자는 유럽의 지식층이었으며 오피니언 리더였습니다. 또한 연금술은 이집트를 거쳐 12세기 중세 유럽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해집니다. 수도사들이 금욕생활을 포기하고 연금술에 탐닉(眈溺)하자 교단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연금술은 단순히 금을 만든다는 하나의 기능보다 이론적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만물창조설'이란 가정하에 세 가지의 구성요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첫째, 비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과 둘째, 무슨 병이든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 '엘릭시르' 마지막으로 뭐든지 녹여버리는 만능용해제 '알카헤스트'입니다.      


    연금술은 인간 욕망의 끝을 보여줍니다. 당시는 위험성을 알지 못했던 치명적인 수은과 유황을 사용한 실험을 많이 수행했고 희생자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연금술사(Alchemist)가 화학자(chemist)의 어원이 된 것처럼 연금술은 대부분 현재의 화학적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증류' 방식을 개발하고 다양하게 적용합니다. 여기에서 증류주인 유럽의 위스키가 발전합니다. 유럽의 중세를 지탱했으며 근대를 여는 주인공이기도 했던 수도사와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엄격한 도제식 교육으로 전합니다.      

    또한 유럽전역에서 발달하는 수공업자들도 이런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받아 도제식 교육을 했습니다. 저 유명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14살에 피렌체의 안토니오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공방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살이 되어서야 베로키오는 다빈치를 정식으로 화가 길드였던 성 루카 조합에 가입시켜 주었습니다.     

 

    누구나 이름을 알리고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절차를 지켜야 했습니다. 만약 스승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후원자의 요구를 거부하고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 군대, 자연과학, 인문학, 예술 모든 분야에는 사승관계, 교육체계가 만들어지며 어떻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근대교육이 열립니다.      


   어느 시대나 좋은 스승을 만나기를 원하고 스승을 추종하거나 뛰어넘기를 원하는 제자들은 많이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갈등은 그 많은 관계만큼이나 지극히 정상적이며 오늘날만 유달리 교권이 침해받지도 않고 좋은 스승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베로키오 공방의 작업실

    물론 제자가 제자답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스승도 스승다워야 합니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리어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라고 하며 스승과 제자의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결국 제자가 배우려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스승은 어디에나 있고 스스로 선택하고 바로 서야 하며, 자신만의 길로 나아가고 독립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용기 없는 자가 자신의 선택을 남에게 의탁하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처럼 제자에서 출발해 누구나 스승이 됩니다. 알면서 스스로 행하고 행함에 부끄러움을 알기란 지극히 어렵지만 본인만이 알 수 있으니 겸양해야 합니다.      


    공자의 황금률 중에는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베풀지 마라”는 뜻으로 공자가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용서할 ‘서’와는 다소 다른 의미이기도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용서할 서는 배려의 의미가 있습니다.      


    스승은 그의 삶과 선택으로 모범을 보이고 제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어느 순간에는 믿고 맡겨야 합니다. 어떤 제자는 능력과 지혜가 뛰어난 천재 안회일 수도 있으며, 어떤 제자는 힘이 있지만 바른 소리 잘하는 성정으로 단명할 수도 있는 자로일 수도 있습니다.    

  

    유비는 천재이며 다재다능한 제갈공명을 품었고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으며, 조조는 비상한 머리로 의중을 잘 알던 양수(계륵)를 죽입니다. 유비만 덕으로 휘하의 장수들을 대했다고 소설에서는 묘사하지만 조조도 만만치 않게 훌륭한 이들이 여러 이유로 구름처럼 몰렸으며 손권은 대대로 충성하는 믿음직한 가신들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왕이 권력이 있든 없든, 주변의 괴롭히는 제후들이 있든 없든, 능력이 있든 없든 개인의 인간으로는 불편하고 불쌍한 왕이 있을지 모르지만 왕에게는 왕의 길이 있습니다.      


    조선의 왕에게 아무리 공맹의 도를 가르쳐도 왕이 듣지 않고 오히려 구속이라고 생각하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스승의 역할은 소를 물가까지 인도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고 트라우마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숙명처럼 주어진 권력, 부, 지식에 교만하지 않고 부단히 스스로 갈고닦아야 합니다.      


    정성을 다하면 스스로 빛나고 배어 나오며 조화롭게 될 수도 있다고 중용은 말합니다. 좋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스승도 제자를 통해 질투 같은 어둠을 밀어내고 서로 배우며 상생하는 관계입니다. 공자는 제자를 통해, 자극을 받으며 제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상황과 성정에 맞는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모두 성인이 아니듯이 성인도 모두 인간은 아닙니다. 모든 스승에게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없는 것을 찾는 욕심이며 제자인 자신도 성찰하지 못하는 교만한 자입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듣고 읽고 사유할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는 것은 바닥에 버린 물을 다시 주어 담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본래 많은 복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첫째 복은 당연히 부모의 은덕입니다. 이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피할 수도 없고 노력한다고 바뀌지도 않습니다. 뒤에서 날라 오는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됩니다.      


    천성과 같은 기질이 또한 숙명입니다. 부모님을 통해 받은 천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인간이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집입니다. 부모와 천성이 복이면서도 숙명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존재의 의미가 퇴색됩니다. 우리가 교육받고 교육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역의 사주팔자가 절대적 세계관이라면 삶의 노력은 무의미하며 인간의 자유 의지도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복이 친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동네 형, 친구, 친인척에게서 어린 시절 삶의 기술을 배웁니다. 누구의 자식이고 어디서 태어났는지 보다, 더 중요합니다.      


    타고난 유전자는 여러 조건이 부합할 때 발현합니다.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발현은 하지만 능력을 신장시키지 못합니다. 자연 친화적 교육도 부모가 직접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절친, 동네 형들과 놀이와 게임, 자연에 나가 수렵하는 방법까지 동네 친구들에게 배웁니다. 그리고 자라면 어느덧 스승, 연장자가 되어 동생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자연스럽게 협업하고 논의하며 사회성을 키우게 됩니다. 동네 형이 공부를 잘해서 도시로 유학 가면 그 형을 쫓아 유학도 가고, 일을 잘하면 함께 장인이 되기도 합니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세웠으며 영남학파의 거점이 되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은 고등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황을 흠모하거나 교육에 목마른 이들이 구름처럼 몰렸습니다. 그런데 이황은 이런 사람 중 유능한 자들을 선별해서 자신의 아들, 손자들과 연결시켜 줍니다.      

겸재 정선의 도산서원

    이순신 장군의 동네 형 중 한 명이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었습니다. 징비록(懲毖錄)에서 유성룡이 직접 밝혔으며 어린 시절 일화를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성룡은 이순신을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에 천거하고 선조와의 갈등에서 중재하며 징비록을 써 이순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순신에게 유성룡은 동네 형이자 스승이었고 동반자였습니다. 유성룡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친분으로 이순신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경험을 토대로 그를 추천했습니다. 원균도 같은 동네에 살았다고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동일한 시기는 아니었다고 보는 게 대세입니다.      


    과거에 미국 뉴욕의 할렘(Harlem)은 범죄의 온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마약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며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동네 형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범죄였고 당연히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단순히 교육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뚜렷한 교육관 하에서 맹자에게 동네 형을 찾아준 것입니다. 맹모 판단의 근거는 항상 맹자가 친구들과 하는 놀이에 있습니다.      

    맹자는 묘지에서 뛰놀거나 장사치 흉내를 냈습니다. 마지막 서당 근처에서는 제례를 흉내 내며 놀았고 그 모습을 본 맹모는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에서 ‘환경’이 바로 동네 형과의 만남입니다.      

    다만 부모님들의 뜻대로 친구들을 골라서 사귀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의 리액턴스 효과(reactance effect, 금지할수록 더욱 소유하고 싶은 심리)만 자극해서 갈등만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맹모의 선택은 훌륭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스승복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돈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교육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다가 최고점 득정자에 대한 부러움은 한편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육시장의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예나 지금이나 가정교사가 되기도 하고 그들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Curie, 1867~1934)는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었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가정교사의 교육만 받았습니다. 스승은 뜻을 세우고 사회에 나가 사회적 관계로 만나는 사람입니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문으로 한 발 디디는 행위입니다. 문을 열고 저 너머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의 땅이 펼쳐집니다. 세상을 이어주는 스승의 손을 잡기만 하면 저 너머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스승은 일평생 한 번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도 귀인인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이(珥, 1536~1584)는 12세에 진사 초시에 급제하며 천재성을 나타 내지만 스승은 어머니 신사임당이었습니다. 17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상을 치른 후에 1년 정도 금강산 절에 들어가 수도합니다. 불교는 절대 금기였지만 그는 혼란과 상실감을 지적 욕망으로 채웁니다.      


    하산하고 그는 자경문이라는 좌우명을 지었습니다. “먼저 뜻을 크게 가지자. 마음을 안정시키자. 혼자를 삼가자. 언제나 실제로 할 일을 생각하자. 참된 뜻을 다하도록 하자. 방심하지 말고 서둘지 말자.”는 좌우명은 훗날 아이들을 교육하는 지침서인 <격몽요결>에 담깁니다.      


    뜻을 세운(立志) 그는 29세까지 모든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합니다. 1558년 이이는 예안(경북 안동의 옛 지명)으로 물러나 있던 이황을 찾았습니다. 35년의 연배 차이가 나지만 이틀간의 만남은 그의 사상을 정립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지식인처럼 편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후에 이황과 이이는 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동인과 서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이기론처럼 조선의 두 기둥이 됩니다. 그들은 유학의 나라에 사상적 토양을 만들고 조선 유학자들의 영원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이황은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군자의 삶을 사며 선비들의 표상이 되며 이이는 그의 좌우명에 따라 죽는 날까지 신하로서 살아가며 관료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이가 절에 들어가 공부한 것에 대해 많은 선비들이 비난하지만 이황은 별다르게 흠잡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도 자손들에게 절에 들어가 인연을 끊을 각오로 공부하라고 다그칩니다. 이이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황은 이이가 학문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어여쁘게 본 것 같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동네 형 이론은 자연스럽게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신경세포입니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 1937~) 박사가 붉은 원숭이의 뇌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거울신경세포는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에 위치하며, 주로 운동과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영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울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해당하는 근육이 움직이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울신경세포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울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따라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거울신경세포는 도구 사용, 언어 학습, 음악 감상 등 다양한 사회적 행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고 사회성이 낮은 자폐 화자가 거울신경세포가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존재를 부정하는 반대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거울신경세포의 반대론자는 독립성에 주목합니다. 즉 거울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와 특별히 다른 형질이나 역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울신경세포는 신경세포의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며 별도 세포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야 이유가 어찌 되었던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어떻게 유전형질 이외의 것을 전달하는지, 혹은 유전자에 내재된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발현시키는지에 대한 나름의 단초를 찾은 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이런 세포, 유전자의 기능 때문에 인간은 타인에 대해 공감을 하고, 영화나 예술품을 관람하고 스포츠를 즐기며 여러 가지 다양한 학습이 단기간에 비교적 정확하게 가능합니다.      


    이 능력의 차이와 다양한 성향이 부합하거나 부조화될 때 엄청난 경우의 수가 발생하게 됩니다. 거울신경세포의 존재 유무를 떠나 학습의 기본이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따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유독 이런 신경세포를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거울신경세포,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세 가지 복을 모두 타고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는 상대적 세계관입니다. 우주 만물과 움직임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화롭게 움직입니다. 우주는 정지되어 있지 않고 거칠고 빠르게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세상이 있을 뿐이며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운명만 고정되었다는 주장이 이상한 일입니다.      


    세상 만물에게는 주어진 숙명이 있으며 인간은 운명에 순응하거나 거스르며 새로운 조화를 향해 나아갈 뿐입니다. 첫째 복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다면 이후의 복은 노력과 연동됩니다. 상성과 운이 맞아 좋은 친구와 스승을 만날 수도 있으며 충분히 조심하고 사려 깊게 피할 수도 있습니다.     

 

    동양의 주역, 풍수지리, 사주팔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교만하지 말고 자연의 일부로서 항상 주의하고 조심해서 선택하고 관계를 맺으라는 의미입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류의 성격검사를 개발한 목적은 건강한 성격에서의 개인차를 이해하고 인정함으로써 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며, 다양한 집단의 조화와 효율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구를 욕하거나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다 내 탓이오, 내 탓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는 맙시다. 어느 정도는 부모 탓, 남 탓, 사회 탓, 스승 탓을 해야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모두 다 성인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믿음으로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스스로 죄에 갇혀 살기에 우리의 오늘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이안(李安, 1954~) 감독의 와호장룡(臥虎藏龍)에는 콴시(關係·관계)의 나라처럼 다양한 관계가 등장합니다. 스승에 대한 존중과 사랑, 애증, 배신, 복수, 질투 등 관계는 고정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 역할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를 보여주며 인과율에 의해 반복되고 숙명 같은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줍니다.    

  

리무바이(유연함), 용(욕망)

    특히 그들의 엄격하면서도 장중하기도 한 사제관계는 모든 관계보다 절대시 되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전통적 관계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아시아에서 사제관계는 어쩌면 서양의 종교적 사제관계와 가깝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가와 그들 제자들의 관계와 에피소드는 유대인들의 탈무드처럼 반복되고 확정되어 전승되는 일종의 신화입니다.      


    제자백가 중에서도 특히 공자학파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공자는 제자를 "자식과 같으며, 친구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스승은 제자의 가르침과 지도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제자의 친구로서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학파의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스승을 존경하고 따르는 문화가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일이든 양면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세월이 지나며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도 한 번 어긋나면 몰랐던 사이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회적 관계이며 이익이 충돌하면 안 보면 그만인 사이입니다. 그러나 인연이 그토록 쉽게 맺어지고 헤어질 수 있다면 인연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결국 어떤 관계를 파행으로 이끌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면면히 이어지는 쌍방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랑이든 짝사랑은 괴롭습니다. 예체능계에서는 현재도 과거와 같은 긴밀한 사제관계가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영화 엑스맨이나 드라마 무빙같이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능력이 부족한 부모들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아이의 능력이 부모를 상회할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좋은 스승을 부모가 직접 찾고 맡길 수 있으면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골프선수 박세리나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처럼 직접 지도하며 테니스 선수인 셀레나 자매의 부모처럼 직접 지도하다 좋은 스승을 찾아 주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과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아이들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우생학은 사라졌지만 천재적 아이들의 정반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헬렌켈러(Helen Keller, 1880~1968)의 설리번(Johanna Mansfield Sullivan, 1886~1968) 같은 스승을 만나는 건 부자가 낙타 바늘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물론 과거보다 모든 게 좋아졌지만 일반 교육도 발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빈부, 성별, 장애, 사회적 위치 등과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좋은 제자가 만들어지고 다시 좋은 스승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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