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계보: 성균관 유생에서 4.19 혁명, 그리고 386까지
우리는 586세대의 신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유독 한국 사회에서 '학생'의 저항은 이토록 거룩하고 영웅적인 서사로 기록되는가?
그 답은 '민주주의'라는 이념 이전에, '지식'이 곧 권력이자 희소 자원이었던 이 땅의 역사적 특수성에 있다.
1. 원형의 탄생: 성균관 유생들, 붓을 든 전사들
조선시대,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문맹이었을 때, 지식 계층은 바로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학생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의 녹을 먹으며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군역과 부역에서 면제되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미래의 지배계급이었다.
이 특권에는 '천하를 걱정해야 한다'는 지식인의 도덕적 책무(Noblesse Oblige)가 뒤따랐다.
왕이 부덕하고 정치가 어지러울 때,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리는 것은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상소와 권당(동맹휴학)은 당대 사회의 유일한 '여론' 형성 수단이었다.
그들의 저항은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겨졌다.
이것이 바로 '배운 자의 저항은 의롭다'는 한국적 영웅 서사의 원형이다.
2. 근대적 부활: 4.19혁명. 교복입은 영웅들
시간이 흘러 1960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가난했고 문맹률이 높았다.
이때 대학생은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한, 새로운 시대의 엘리트였다.
가난한 부모와 형제들의 희생 위에서 대학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며 부채였다. 그들은 가문의 희망이며 나라의 기둥이었다.
그랬기에,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가 자행되었을때, 이 새로운 엘리트들은 "배운 자로서 침묵할 수 없다"는 도덕적 책무감으로 거리에 나섰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의 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4.19 혁명의 성공 신화는, '학생 저항 = 정의'라는 공식을 대한민국 국민의 뇌리에 완벽하게 각인시켰다.
학생은 더이상 단순한 학생이 아니었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는 의인의 상징이 되었다.
3. 신화의 완성: 80년대, 최후의 계승자들
그리고 1980년대, 586세대는 이 영웅의 계보, 그 정점에 서게 된다.
그들은 앞선 세대가 닦아놓은 영웅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80년대에도 대학 진학률은 여전히 20%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처럼 누구나 대학에 가는 시대가 아니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그 자체로 여전히 사회적 엘리트라는 상징 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4.19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 군부독재라는 거대한 불의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시대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서구에서 수입된 정교한 이념(마르크스주의 등)으로 무장했다.
그들의 저항은 더 이상 막연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따. 과학적 분석틀과 변혁의 청사진을 가진 체계적 혁명이었다.
또한 '광주'라는, 선배 세대는 겪지 못했던 국가 폭력의 거대한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었다.
눈 앞에서 시민들이 학살당했다는 부채의식은, 그들의 투쟁과 복수에 구원이라는 비장미를 더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그들의 저항을 단순한 민주화 투쟁을 넘어, 더욱 체계적이고, 더욱 비장하며, 더욱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민주화 투쟁을 넘어, 제국주의의 압제에 맞서 민중을 해방시키고,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야 한다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
우리는 그 의미지를 기억한다.
흰 머리띠를 두를 채 스크럼을 짜고, 태극기를 앞세워 최루탄 연기 속으로 행진는 젊음들.
카메라는 언제나 학생들의 비장한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그 뒤에서 묵묵하게 박수치던 이름없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풍경으로 사라졌다.
언론과 대중문화는 이 비장한 청춘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재확산하면서, 80년대 민주화 토쟁을 우직 그들만의 독점적 서사로 완성시켰다.
우리는 586세대를 '민주화의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특권적 지위를 물려받은 마지막 상속자들'이라 명명한다.
그들은 500년간 이어진 '저항 엘리트주의'의 마지막 꿀을 빨아먹은 세대였다.
그들은 선배들이 물려준 '학생=정의'라는 후광과 '절대악'이라는 손쉬운 적, 그리고 '광주'라는 도덕적 부채감 위에서 너무나도 쉽게 영웅이 되었다.
그들의 죄는 단순히 권력을 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죄는, 자신들이 상속받은 그 특권적 지위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새로운 봉건 체제를 구축한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