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24》
오늘은 31절입니다. 106년전에 일제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첫날이지요. 당신의 31절은 어떤 의미입니까? 월요일 대체 공휴일로 이어지는 봄연휴인지, 그날의 함성으로 외치는 계몽령인지, 계엄령인지. 각자가 생각하는 31절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늦겨울이 늘어져 아직 매화가 피지 않았지만, 나는 6년전에 31절을《매화절》로 선포했습니다.
봄이 겨울에게 매화로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백년 전 오늘처럼
매화꿀만 노리는 포악한 일벌은
긴 봉침으로 꽃들을 협박한다
매화들은 꽃단지에 담은
향기로만 목놓아 독립을 외친다
봄이 겨울에게 독립하는 것보다 난
몸이 침대에서 독립하는 게 더 어렵다
나는 매일아침 독립을 선언한다
나태와 게으름으로부터
일신의 안락과 편의로부터
편견과 타인의 이목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은 내가 나를 이기는 극기다
나는 삼일절을 앞으로
매화절이라 부르리라
밤은 빛의 부재가 아니라 결핍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도 빛은 존재합니다. 암흑 에너지가 충만한 우주보다 더 깊은 어둠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밤이 깊을수록 별빛은 더 빛납니다.
천문대는 도시의 불빛을 피해 깊고 높은 산으로 갑니다. 어린시절에는 시골의 고향집이 천문대였습니다. 여름날 저녁에 모기를 쫓는 모캣불을 피우고 마당에서 손부채로 더위를 날렸습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별빛이 부서지고, 하늘을 가로 흐르는 은하수강을 보며 잠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은하수가 흐를 텐데, 나는 고향집 천문대를 도시에 빼앗겼습니다. 별빛도 휘황찬란한 불빛에 길을 잃었습니다. 이제 은하수는 더 높은 북쪽의 산간오지로 이사를 갔습니다.
삼한의 추위 속에도 온기는 있고, 삼복더위에도 서늘함이 존재합니다. '선 속에 악이 있고 악 속에 선이 있다'는 말이 어떻게 받아 들여지나요? 하나님이 노아시대에 세상을 심판할 때, 암수 짝을 지어 방주에 태웠다고 합니다. '선'이 혼자서 탈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악'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악'도 방주를 타기 위해 짝을 찾았는데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주의 문이 천천히 닫히자 어쩔수없이 둘이 손잡고 탔다고 합니다. 이 땅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달항아리는《예각입술 흙요변 둥근달항아리》입니다. 한 몸에 두가지 흙을 품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좋은 백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 도공들의 기록들이 많이 나옵니다.
전국에서 좋은 백토를 경기도 광주의 관요로 모읍니다. 더 좋은 백자를 생산하기 위해 이 흙 저 흙을 섞어서 구웠습니다. '곤양의 수을토가 남아 하동백토와 반죽해 구웠는데, 이전 것만 못하다' 라는 숙종실록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조선의 백자 중에서 한 몸에 두가지 흙이 섞인 채 구워진 건 극히 드뭅니다. 도공들의 장인정신이 두 흙이 하나가 될 때까지 주물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달항아리가 실록의 기록을 증명하는 산 증거된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래 시는 그 감탄을 적었습니다. 10년 전에《예각입술 흙요변 둥근달항아리 》를 보고 느꼈던 감정 중 하나입니다.
백자의 몸속엔 하얀 피가 흐른다
뼈가 닿는 진피마저 하얗다
속옷에서 두루마기까지
하얀 것을 두르니
암만 봐도 천생의 학이다
가끔씩 흘리는 눈물조차
투명한 흰색이니
백자는 하양의 극치인가 보다
높이 47.5cm, 몸체지름 42cm, 입지름 20.5cm, 밑지름 18cm 입니다. 두툼한 예각입술에 당당하게 넓은 어깨를 지나 굽으로 내려갈수록 잘록해지는 산뜻함을 풍깁니다.
박수근 화백의 화풍이 느껴집니다. '빨래터'의 정겨움과 따뜻함이 베여 있습니다. 이 달항아리를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암만 봐도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정겨움과 따뜻함의 극치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겨울 세상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봄이 왔는데,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삼한추위에도 봄은 있습니다. 곧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것입니다. 봄의 축포가 터져도 나는 겨울의 고마움울 잊지 않겠습니다.
나 또한 선과 악을 한 몸에 담고 있습니다. 겨울의 차가운 마음도 나의 일부입니다. 봄날의 따뜻함도 나의 일부입니다.《예각입술 흙요변 둥근달항아리 》는 다른 달항아리와 달리 차별화된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미 제 몸 속에 차이를 스스로 인정한 까닭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나에게는 매화절입니다. 365일 나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겠습니다. 봄의 방아쇠를 당기는 매화 한송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 향기에 스스로 감동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