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연재28》
《허무(虛無)》
산이 아직 불탄다
불 타면서 느끼는
속절없는 나무의 심정
연기 한점 없이 마음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
하늘이 내린 얕은 봄비에
시커멓게 불탄 몸만
덩그러니 서 있네
산이 불타는데 나무는 온전할 수 있을까요? 산을 태우는 게 나무입니다. 대대손손 소중히 지켜온 나무들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갑니다. 천수를 누리고 아름답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비명횡사로 떼죽음을 당하는데, 다들 천하태평입니다. 이 난리 통에도 정치인들은 표를 구걸하러 갑니다. 천불난 민심은 편집되어 보도되고, 의도되고 계획된 산불은 천재지변으로 돌변합니다.
수시로 날아드는 불조심의 문자에 화딱지가 납니다. 불조심을 안해서 산불이 난 것입니까? 전 국민을 잠재적 산불 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산불의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지 않고, 온통 불바다인 산을 찍어 나르는 언론의 작태도 한심합니다.
산불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허무주의에 젖어 드는 내 마음도 천불이 나지만, 나는 주먹 쥐고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마음 무겁게 달항아리 연재 28을 씁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는 살인입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살인을 가장 큰 죄로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은 언제일까요? 그 질문에 정답은 성경에 나옵니다.
선악과 사건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 가인은 농부가 되고 둘째 아들 아벨은 목축업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이 일에 분노를 느꼈고, 급기야 둘이 들에 있을 때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이 사건이 성경에 나타난 인류 최초의 살인입니다.
정말 사소한 일로 일어난 살인입니다. 제사가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데, 가인은 왜 동생을 죽였을까요? 가인이 느꼈을 거절에 대한 실망감을 어느 정도 공감은 갑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인의 경험을 안 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살인으로 곧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분노의 불구덩이에 빠진 가인은 끝내 넘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넜습니다. 이 감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자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당장의 거절감에 휩싸여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수많은 가인을 보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가인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는 가인으로 돌변할까요? 살인이란 극단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는 잘 안 되는데 남은 잘 될 때 소심한 가인이 됩니다. ‘왜 나의 제물은 안 받으셨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 그냥 분해하고 안색이 변합니다. 하늘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나와 남을 미워하게 됩니다. 자신과 남을 미워함이 곧 소극적 살인입니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 말씀입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아벨 같은 달항아리입니다. 높이(키)가 40cm 이상의 백자대호 원호만 달항아리라 부릅니다. 키가 40cm 이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당시 기술력으로 최고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벨 달항아리는 높이 53cm, 몸체지름 53cm, 입지름 24cm, 밑지름 20.5cm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웅장합니다. 예각입술 달품은 둥근달항아리는 높이와 몸체지름이 모두 53cm로 동일하여 완전한 보름달의 형체를 띱니다. 입술이 유독 큰 편이나 그만큼 배가 불룩하니 덩치도 크고 굽이 높아 균형 잡힌 왕보름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통 전반에 걸쳐 넓은 빙렬이 나타나며, 유약이 덜발린 굽 쪽에는 옹이를 닮은 기하학적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달항아리만의 대체 불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빛이 투과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백토를 사용했는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작은 랜턴을 항아리 안에 넣으면, 구름에 휩싸인 보름달이 뜹니다. 《예각입술 달품은 둥근달항아리》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달항아리의 달 품은 그 모습은 황홀하고도 기묘합니다.
“달이 달을 품었다. 빛이 닿은 순간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된다. 미증유의 세계가 열린다.” “내가 만난 최고의 달 사람 손에서 태어난 슈퍼문 첫눈에 반했다. 누군들 안 반할까 그대같이 믿음직한 달항아리 또 있을까? 그대를 닮고 싶어라.” 이 달항아리에 녹아든 내 마음의 조각들입니다.
이 달항아리 옆에 다른 달항아리를 놓으면 초라해집니다. 본능적으로 사람 눈은 둘을 비교합니다. 그래서 달항아리 옆에 달항아리를 전시하면 안 됩니다. 멀찍이 떼어 놓아야 합니다. 달빛은 겹치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두워집니다. 하늘에 달은 하나여야 합니다. 하늘에 태양이 있을 때 뜬 낮달이 얼마나 초라한지 압니다. 달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릅니다. 달은 밤에 떠야 그 가치가 빛납니다.
하늘에 달이 하나뿐인 이유입니다. 당신도 나도 위대한 달항아리입니다. 더 크고 아름다운 달항아리가 옆에 있다고 해서 쪼그라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 하나가 세상에 하나뿐인 달항아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벨과 비교되는 가인은 아벨이 심은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초라한 자신을 스스로 무너뜨린 건 가인 자신이었습니다.
자기 존재가치에 대한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곡간에서 인심이 납니다. 쌀독 바닥이 긁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밥을 지어줄 수 있겠습니까? 모든 폭력의 근원은 자존감의 부재에 있습니다.
어제 혼자 매화 수목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곤양산에 다녀왔습니다.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매화는 서로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무수한 달항아리를 만났습니다.
《산중매(山中梅)》
깊은 산중에 혼자
매화는 꽃 피우고 진다
남이 보나 안보나
알아주나 안알아주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이제 조용히 즐긴다
벌집 건드린 난리통에도
독락당을 누리는구나
부러우면 지는 건데
완전 개부럽다
우리는 모두 대체불가한 아벨의 달항아리입니다. 비교하거나 비교당할 존재가 아닙니다. 인생길 걸으면서 소심한 가인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벨의 달항아리 떠올리세요. 나도 타인도 언제나 소중한 달항아리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