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었던 송구영신 예배가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일 년이 끝나 갑니다. 정말 세월의 빠르기가 쏜 미사일 같습니다. 미사일은 절대 뒤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앞만 향해 날아갑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살아온 연수를 묻는 바로에게 답했던 야곱의 말이 생각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입니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어찌 야곱뿐이겠습니까? 이 땅에 발 디디고 사는 나그네라면 누구나 야곱의 삶이지요.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세월이 천천히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합니다. 10대는 10km로 20대는 20km 속도로, 50대엔 가속도가 붙어서 한 달이 훌쩍 날아갑니다. 70대 어른들 말씀으로는 일 년이 일주일 같다고 합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인생의 속도는 얼마입니까? 정말 나이의 속도에 비례한다고 느끼십니까? 대부분 동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속도가 빨라지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연륜이 쌓이면 호기심을 잃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로 시간을 인지합니다.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의 다섯 가지 감각 정보를 모아 통합된 뭉텅이로 만들어 기억합니다. 그 기억의 양이 많으면 시간은 느리게 느껴지고, 적으면 시간은 빠르게 느껴집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는 속도란 기억의 양에 대한 주관적 느낌입니다.
일 년, 열두 달, 하루 24시간, 주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점점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억의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는 새롭고 낯선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뇌과학에서는 흥미롭거나 충격적인 일을 만나면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신경회로에 가해지는 자극이 강해져 ‘강한 기억’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일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익숙한 일에는 나면 금새 호기심을 잃고 맙니다. 초등학교 첫 소풍 전날에 설레임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밤잠을 설칩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소풍이 재미가 없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소풍 자체가 싫어집니다.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과 처음 만나는 음식들 때문입니다. 인생을 한 오십 년 살고 나면 봄을 오십 번 맞은 겁니다. 오십 번 같은 장소에 여행을 갔다면 무슨 호기심이 있겠습니까? 겨우 내내 기다리던 봄이 왔는데도 막상 봄이 오면 여름을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처음 맞았던 환희에 찬 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십 번 넘게 간 여행지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즐기면 완전 새로운 곳이 됩니다. 일상의 출근길도 루틴을 벗어나 안 가본 길로 가면 우리의 뇌는 호기심을 발동시킵니다. 황량한 겨울 벌판도 환희에 찬 여행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사람들이 왜 달항아리에 열광하는지 뇌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백자는 문양장식 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 순백자(純白磁) 또는 소문백자(素文白磁)는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무늬가 전혀 없거나 단순한 음각·양각·투각 등의 기법으로 무늬를 넣은 것입니다. 둘째, 상감백자는 기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낸 다음 그 패인 홈을 자토나 점토로 넣어 재벌 했을 때 문양이 검은색 또는 회색으로 발색 됩니다.
셋째, 청화백자는 산화코발트(CoO) 성분의 안료를 붓으로 무늬를 그리고 유약을 입혀 구웠기에 무늬가 청색으로 나타납니다. 넷째, 철화백자(鐵畵白磁)는 산화철(FeO)을 주성분으로 하는 안료로 그려서 문양이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 등으로 발색 됩니다. 마지막, 진사백자(辰砂白磁)는 산화동(CuO)을 사용해 문양을 그리거나 채색을 해 붉은색 또는 자주색을 띱니다.
순백자를 뺀 나머지 네 종류의 백자들은 자토(점토)나 안료로 유약 밑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항상 정면이 있습니다. 주 문양이 있다면 그 그림이 있는 면이 정면입니다. 한마디로 도자기가 너무 단순합니다. 문양을 중심으로 정면 측면 후면의 도자기를 감상해야 합니다. 우리 뇌는 본걸 또 보는 걸 식상해 합니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늘 새로운 것을 찾아 산기슭을 헤맵니다.
달항아리는 높이(키)가 40cm 이상되는 순백자 원호(圓壺)를 말합니다. 달항아리에는 문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정된 정면이 없고, 모든 면이 정면입니다. 하나의 달항아리 안에는 수십 개의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10도만 돌리면 36개의 달항아리가, 5도를 돌리면 72개의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1도만 360개의 달항아리가 나옵니다. 그럼 0.5도씩 돌리면 몇 개의 달항아리가 나올까요? 무려 720개의 달항아리가 나옵니다. 아무리 자주 보아도 늘 새로운 달이 떠오르니 우리의 뇌는 달항아리를 보고 열광하는 것입니다.
빛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주변 환경에 따라서 달항아리는 팔색조처럼 낯빛을 바꿉니다. 거기다가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달빛이 변화하니 누군들 달항아리를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인이 달항아리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작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45.1cm의 18세기 달항아리가 456만 달러(약 60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달항아리 경매사상 최고가입니다. 일본인 개인 소장자가 내놓은 이 달항아리의 예상 낙찰가는 100만~200만 달러(약 13억~26억원)를 한참 뛰어넘었습니다.
크리스티 측은 “수려한 모양과 우윳빛이 나는 아름다운 유백색이 특징으로, 보수된 적이 없는 훌륭한 상태로 보존돼 있으며, 이런 상태의 조선 도자기는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높고 최근 10년간 경매에 나온 달항아리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이 경매에 참여했다면 얼마를 적어 내시겠습니까? 달항아리 가격으로 60억 원이 비싸다고 생각하십니까? 수 십개의 항아리를 한 개의 가격으로 샀다면 저렴한 것이 아닐까요?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에 비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채굴이 종료되고 나면 더 많이 오를 것입니다. 희소성 때문입니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팔 물건이 제한적이라면 당연히 가격은 오르겠죠.
전 국민이 달항아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이 60억 달항아리입니다. 낙찰자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이 닿아 달항아리 아트뮤즈에 소장품 달항아리들과 함께 전시할 기회가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