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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연재15

by 이종열

《달항아리 연재15》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 말입니다. 달항아리를 보면 늘 이 말이 머릿속에서 곱씹어집니다. 아직도 “달항아리를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었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달항아리를 만든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오직 조선에서만 생산한 백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항아리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보물입니다.

달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 흙은 백토뿐입니다. 청자를 만드는 흙은 산화철이 많이 들어 있어 붉은빛을 띠는 자토(赭土)입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붉은 점토질 흙입니다. 청자는 통상 1200도 ~ 1250도에서 구워지는데 그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흙이 타서 주저앉습니다.

역사상 청자를 만든 나라는 중국(송나라)과 우리나라(고려) 두 나라뿐입니다. 중국은 한대부터 초기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신라 말기부터 백자를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청자를 만드는 기술에 백토로 업그레이드된 것이 백자입니다.

백토는 1300도 전후에서 익어집니다. 그래서 청자를 만든 나라에서만 백자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가마 온도를 1300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백자는 중국과 우리나라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중질의 백자를 태국과 베트남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백자다운 백자는 조선 중기까지 명나라와 조선만 생산되었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끌고 간 이삼평에 의해 백자를 생산하게 됩니다. 아리타 조하쿠천(上白川)의 이즈미산(泉山)에서 백자를 굽는 백토를 발견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605년경 이곳에 ‘텐구다니가마(天狗谷窯)’를 열었는데 이것이 일본 백자의 시초가 됩니다. 일본에서 백자를 처음 생산한 이삼평은 현재 일본에서 도조 또는 도신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1650년 145점의 자기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 해외 첫 수출을 했습니다. 1659년에는 56,700점의 백자를 수출했는데, 유럽에서는 아리타 자기를 이마리(伊萬里) 자기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는 아리타에서 가까운 이마리항구로 옮겨 출하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첫 수출 뒤 70년 동안 약 700만 개의 자기를 세계 각지로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도자기를 팔아서 번 돈으로 일본 근대화의 자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기술로 일본은 떼돈을 벌고 근대화를 이뤄낸 것입니다.

유럽에서 백자는 1709년 독일에 드레스덴에서 처음 생산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청나라에서 땅뜨레꼴 신부가 프랑스 본국으로 보낸 서한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부유한 상인들이 몇 년 전에 영국이나 독일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백돈자를 사갔으나, 고령토는 가져가지 못해 실패했다고 말했다. 중국 상인들은 그들이 뼈 없이 살을 지탱하려 했다고 웃으며 말하고 있어서 고령토는 뼈대 역할을, 백돈자는 살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유럽의 흙은 백자를 구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청나라의 기술을 가지고 가서 각고의 노력 끝에 소뼈를 빻아 넣어 백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자기를 본차이나로 부릅니다.

서양과 동양은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은 자기를 단단하고 백색이며, 반투명으로 흡수율이 낮고, 두드렸을 때 쨍소리가 나는 것을 말합니다. 1200도 이하에서 구워지면 도기, 1200도 ~ 1300도에서 구워지면 석기, 1300도 이상에서 구워지는 것을 자기로, 구워지는 온도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나눕니다.

반대로 동양에서는 도기와 자기를 엄격하게 나누지 않고, 두드려서 쨍하고 쇳소리가 나면 모두 자기라고 부르는데, 그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도자기로 통칭합니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다면 청자는 석기이고, 자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백자뿐입니다.

오늘 소개할 달항아리는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달항아리입니다. 종전 국내 경매 최고가는 2019년 서울옥션에서 낙찰된 31억 원이었습니다. 이번에 출품된 달항아리는 높이(키) 47.5cm로 엄청 높은 경매가가 예상됐지만, 예상가보다 낮은 34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경매 시작 전 시작가를 35억 원에 출품하였으나, 실제 경매에서는 32억 원으로 시작가를 조정하였습니다. 현장이 아닌 서면 응찰자에게 낙찰됐는데, 이번에도 낙찰자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앞선 연재에서 쓴 달항아리는 23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6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또, 23년 9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2.5cm 달항아리가 47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이번 서울 옥션에 나온 달항아리는 해외 경매 출품작보다 컸는데, 시작가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것이 의외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골동품 중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해외 판매를 금지하는 ‘문화재보호법’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아직도 우리 예술품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국민정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서 높게 평가되면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비단 골동품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술인에 대한 평가도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기는 매한가지”란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를 우리가 높게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2천 년 전에 자기 고향에서 무시당하고 배척받으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옆에 가까이 있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본성을 거슬러서 우리 문화재의 가치는 우리가 먼저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 연재까지 달항아리 연재를 15회 했습니다. 국보 3점, 보물 4점, 해외 유명 달항아리 2점, 경매 달항아리 2점 등입니다. 2025년 16회 연재부터는 달항아리 아트뮤즈의 소장품 달항아리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나갈 것입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립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을사년(乙巳年) 새해에는 뮤즈님들의 가정에 안녕과 건강이 함께 하시고, 소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먼저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제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2025년, 달항아리와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푸른뱀’의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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