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by 이파리



캐치볼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미리 아프려고


내 마음이 던진 공을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날아왔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


모두에게 무의식적인 마음의 반응 경향성이 있다. 의식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알아채기 어렵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알기 어려운 것처럼, 폐허가 되어야만 집의 존재를 안다. 시력 좋은 시인 덕에 나도 새삼 내 마음이 던진 불타는 공을 알아보았다. 눈물은 눈에서 나는 건데 왜 울컥은 목에서 하는 건지. 꼭 목에 우물 펌프가 있는 것처럼. 펌프질은 누가 하는 걸까. 글러브를 단단히 조이는 시인이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러진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