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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Jul 13.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날숨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우리의 삶의 편린으로 겪어야만 하는 일은 지진이나 홍수와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나 전쟁만은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겪은 심각한 트라우마의 흔적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고, 그 상처의 흔적은 자율신경계의 생리학적 이상을 만들고, 마치 잘 작동되고 있던 컴퓨터의 시스템에 부하가 걸린 것처럼 자그마한 자극에도 예고 없이 불어 닥치는 것 같다.


"나는 그러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았어,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이러한 생각들은 다시금 그 아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누군가는 차마 겪었던 일들을 끝내 말하지 못한다. 그러한 일을 무력하게 겪을 수밖에 없었고, 왜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자책하는 것도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며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상처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명상을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가해자에 대한 혐오로 죽이고 싶은 마음의 충동에 스스로 놀라, 죄의식에 시달린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충동 역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어떠한 충동을 느꼈다고 해서 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음이다. 언젠가는 그러한 충동의 마음도 끊임없는 관찰로 녹여내고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에 머물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겪어야만 하는 무자비한 자연재해와 같이 홍수나 지진처럼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홍수와 지진의 피해를 나쁜 사람이 더 많이 입어야 한다면 그것은 에고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 전생에 우리가 좋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견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악인이 더 많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불행한 일은 그들에게만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만 작동된다면 이 지구에서 언젠가 마침내 악인이 없어질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같은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같은 반응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삶의 고난은 어쩔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갑작스러운 사건의 경험이 몸과 마음을 무력하게 만들지라도, 그 고통을 그 아픔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상황에 압도된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결심으로 성장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어야 했고, 그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자신을 향한 바람은 자기 비하가 되기 쉽다. 다시 자기혐오로 발전할 수 있다. 타인에 의한 물리적 폭력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심한 정신적 폭력을 자신에게 스스로 행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지우기 쉽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는 자신에 대한 원초적 본능이다. 그러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시간이 흘러도 버리기 쉽지 않다. 위로와 격려, 지지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를 돕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줄증이든 공황장애이든 무의식의 영역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상담과 약물치료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수용의 자세는 치유의 관건일 뿐만 아니라 명상의 주요한 원리로도 작동된다.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반응하는 생리적 현상으로 인한 심적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자신이다. 나를 변화시킬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도 자신 밖에 없다. 자꾸만 되살아나는 상처가 현재를 망가뜨리고 있다면 그 고통에 대면할 수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감내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반복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어떠한 마음이라도 지켜보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하여 무의식적인 반응의 에너지 덩어리를 서서히 녹여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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