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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인 Jul 17. 2024

선택

긴 날숨으로


달리기를 잘하는 이가 있다면 못하는 이가 있고, 공부를 잘하는 이가 있으면 못하는 이가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마주해야 만 한다. 하지만 잘하고 못한다는 비교를 통해서 다양한 인간 존재의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 지구에 태어난 것만으로 우리는 존엄한 존재이다. 비교는 질투, 열등감, 후회, 자책, 죄의식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또한 좋은 의도를 지녔다 하더라도 조언과 충고, 지적, 평가는 쾌감, 우월감 등의 감각적 게임으로 변하기 쉽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가능성의 인간을 잘못과 실수, 부족함으로 한정하지 않는 연민의 공간이다.


누군가 ‘이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적어 내려가고 있다면 그 조건에 한정받게끔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부여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가 만든 제도의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 먼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예술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먼저 길러야 한다.

    

명상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수용이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 긍정과 부정의 판단이 전제되지 않는 마음이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어떠한 느낌이라도 받아들이고, 어떠한 기분이든 허용하고, 어떠한 감정이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명상 중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 동물적인 본능만이 아니라, 악한 것들도 올라올 수 있다. 순간의 느낌과 감정, 생각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자연의 일부처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일 뿐이다. 누구라도 어떠한 상황 하에 그 순간의 느낌, 감정, 생각은 그 순간의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느낌(감각)을 관찰하듯이 감정도 생각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을 함께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변화할 수 있기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편견과 집착, 탐욕 등이 분해되고 용해되어 변화할 수 있기에 인도 사람들은 유지의 신, 위슈누 보다 파괴의 신, 쉬바에 대한 숭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미워하더라도, 설령 갈망과 혐오의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순간 창조는 시작된다. 우리가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는 그 순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누구나 행복해 지기를 바라지만 행복은 바람에 있지 않다.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충족시켜 주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 속에 있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안정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느낌이든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그 순간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유명한 광고 카피가 있었듯이 우리의 삶 또한 순간순간 선택의 귀로에 놓여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은 선택한 후  모든 것이 달라진 또는 달라질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무엇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매 순간 긍정으로 부정으로 삶의 방향을 자신이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부의 사물(자극)에 의하여 무언가를 느꼈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화를 내거나,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느낌을 회피하고 억압해버리거나, 아니면 마음의 평정을 지키면서 표현하며 행동할 것이다. 자신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려 할 때는 긍정의 씨앗을 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명상하는 사람이라면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감각을 관찰하며 평정을 지키면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고, 유익한 것을 선택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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