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을 위하 요가
우리는 많은 경우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한다. 나는 가끔 냉장고 문을 열고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잊어버리고 우두커니 서있거나, 외출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며 가스 밸브를 열어 놓았는지 염려를 하고, 복도를 걸어 나오며 현관문이 잠겼는지 확신하지 못해 다시 되돌아가서 확인하기도 한다. 누워있거니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걷고 있거나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등 대부분의 행위를 분명히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사실 마음의 선행이 우선함으로써 우리는 행동한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마음을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인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다
요가에 있어서 위빳사나(vipassana) 명상의 두 주축인 평정심(Upekha)과 그중 하나인 싸띠(sāti), 알아차림(awareness)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용어는 붓디(buddhi), 지성(intellect)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마음 챙김(mindfulness)’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싸띠(sāti)’는 싼쓰끄리뜨의 스므르띠(smṛti), 기억(memory)과 그 어원을 같이 한다. 지성이란 쌍키여 & 요가(sāṅkhya & yoga) 철학에서 세상이 전개되는 25개의 요소(tattva) 중 정신의 원리, 뿌루샤(puruṣa)와 물질의 원리, 쁘라끄르띠(prakṛti)가 만나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최초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로 드러나는 것을 붓디(buddhi)라고 표현한다.
개체적 지성의 원리인 붓디로부터 전개되는 자아(I-ness), 아함까라(ahaṃkāra), 그리고 (작은) 마음(mind), 마나스(manas)가 만나게 되면 찟따(citta), 의식(consciousness)이 작동된다. 그러나 의식의 작동은 반드시 기억의 작용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일상 의식은 과거 경험의 무수한 정보인 기억의 파편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지성의 기능 역시 기억을 배제하지 않는다. 자아와 마음을 포함한 (큰) 마음, 의식(citta)이 기능하는 데 있어서, 지성은 알아차림과 자각, 주시, 관찰, 주의집중 등 지켜보는 역할을 담당한다. 요가의 동작과 자세의 반복적 수련은 의식계발의 훌륭한 수단이 된다. 지속적인 수련을 통하여 동작과 자세를 스스로 점검하고, 몸을 정렬하며 균형 잡는 훈련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훈련에는 움직임에 대한 주의집중과 관찰 즉 알아차림의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
붓다는 나라는 존재를 먼저 몸(身), 느낌/감각(受), 마음(心), 심리현상(法)들로 나누어서 각각의 대상에 집중하여 그것을 무상, 고, 무아로 통찰할 것을 설한다. 몸과 마음의 현상에 대한 청정한 알아차림을 의미하는 싸띠는 붓다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수행기법이다. 싸띠는 사마타(선정)와 위빳사나(지혜) 수련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싸띠의 개발은 주의를 선택적으로 하나의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특성을 지닌다. 즉 명상의 대상에 주의를 모아서 어떠한 것이든 판단이나 분별하지 말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물심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요가수련이 된다면 위빳사나 명상수행의 근간이 되는 신수심법의 사념처(四念處)에서 신념처와 수념처의 기초를 다지게 할 것이다.
요가자세를 실현하기 위해 사지를 움직일 때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나, 특정 근육의 힘을 사용할 수 없거나, 관절의 가동성, 무언가 막혀 있는 느낌이 있는 부분 등을 지각하게 된다. 어느 쪽 다리에만 힘을 주고 있는지, 어느 쪽 다리에 더 힘을 주어야 하는지, 덜 주어야 하는지, 어떤 근육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점검하고 펴고 바로 잡으며, 자세를 얼마 간 지속할 것인지, 언제 벗어 나올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요가자세를 수련할 때 누구나 몸의 감각과 그로 인한 마음의 반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밖에 없는 순간이다. 이 아픈 감각을 피할 것인가 지켜볼 것인가의 기로에서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짧은 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훌륭한 찰나를 마주하게 된다. 동작과 자세로 인한 몸의 감각과 변화하는 마음과 함께 머무르는 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 순간 마음은 과거로도 미래로도 달려갈 수 없다.
아써너 수련은 움직임 전체가 의식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자신을 관찰하고 목격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행한다는 것은 자신을 지켜보는 행위이다. 움직임을 방심하지 않고 지켜보며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주의집중을 놓치고, 딴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신체의 균형을 잃어버릴 것이다. 생각은 의식(citta)의 구성요소 중 마나스(manas), 마음에 속하는 것으로, 의식이 신체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생각으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올바른 수련은 우리의 마음을 명료하고 반성적 상태로 유지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동작과 자세, 그 움직임을 명상의 대상으로 하는 움직이는 명상으로의 승화가 관건이 된다. 따라서 보다 깊은 차원에서 의식을 깨어 있는 상태로 유지하면서 자신이 취하고 있는 자세나 동작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수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몸과 마음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 되어 안정된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된다.
요가수련의 목적은 균형 잡힌 건강한 육체와 더불어 마음의 평화를 도출하고자 한다. 야마와 니야마를 즉 계, 윤리와 도덕을 근간으로 잘못된 습관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성장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가꾸어 가는 하나의 수단, 또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작과 자세의 반복적인 수련을 통해서 외적 육체에서 내적 육체로, 다시 말하자면 내면에 잠자고 있는 영적 에너지를 개발하여 존재의 근원에 대한 통찰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