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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오춘기 그리고 갱년기

여긴 치열한 생존의 현장입니다....

by zejebell

사춘기와 오춘기 그리고 갱년기가 공존하고 있는 이곳은 바로 우리 집입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절대 섞일 수 없는 그들은 겉으로도, 속으로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에 우연히 시간이 겹치게 되는 순간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서로 너네 별로 돌아가라며 소리치고는 결국 자기 방으로 문을 꽝 닫고 들어가는 게 전부이지만 계속해서 흐르는 냉랭한 공기는 난방을 아무리 돌려도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큰 소리 지르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다들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그래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수양이 부족한 갱년기는 가슴의 울화로 인해 사춘기와 오춘기에게 원망이 쌓인 상태입니다. 사춘기는... 사춘기입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신체도 성장하느라 에너지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상태이기에 그저 사고 치지 않고 성장하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제 생각에 문제는... 오춘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꾹 참고 지켜보고 있기는 합니다. 오춘기는 사춘기를 잘 보내지 못한 부작용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물론, 다른 이유들도 섞여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춘기라는 것이 정확한 용어는 아니겠지만 어른이 반항아처럼 구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따로 없어 그냥 사용하겠습니다.


오춘기는 억울합니다. 갱년기의 울화와 비슷하지만 사춘기의 반항심과 짜증, 귀찮음과도 비슷합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 큰소리치고 더 화를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부분들에 대해서 역시 기준이 흔들리게 되어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사춘기도 오춘기도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정말 동굴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자신의 공간과 자신만의 생각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살았나 죽었나 가끔 찔러보기라도 할 참이면 미친 듯이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화낼 일인지에 대해 이해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두고 보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갱년기는 마음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공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명상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꾸 부정적이고 안 좋은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꼬리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사춘기와 오춘기의 분노와 화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화내보았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상황은 더욱 억울해져만 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흔들리면서 계속 성장해 나가는 것이 기본값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장이란 용어가 비단 청년들과 같은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처럼 성장은 인생에 있어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거부할 것인지 문제에 올라탈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일 뿐입니다.


부족하고 문제 많은 개인들이지만 가족으로써 함께 하는 데 있어 서로에게 플러스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서로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해 보이지만 예전에 그랬듯이 함께 하면서 행복함을 느끼고 두렵기만 한 미래라도 문제없이 해처 나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다시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화가 나고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이 문을 닫고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르려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불안정한 모습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서로가 노력하고 있음을 기특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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