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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Oct 19. 2022

 감정의 쓰레기통

자신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마세요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온갖 말과 행동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자녀 된 도리라 생각하며 자라왔다. (대다수의 부모님은 절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말대꾸 한 번 잘못했다가 난리가 난 경험을 다들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도 한 번 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참다 참다 말을 꺼내 놓는 것이 이내 잔소리가 되듯 자녀들 역시 말대꾸(하지만 자신의 의견)를 하는 것이 여러 번 속으로 생각했던 말이라는 것을 부모님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사춘기쯤 되면 아무리 어리게만 보이던 자녀들도 부모에 대해 어느 정도 눈치를 채 버린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며 또한 그들이 자신에게 한 모든 말들 역시 다 맞는 의견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유교의 나라답게 어린 자녀는 (부모에게 언제나 자녀는 어리다.) 부모의 말씀에도 반항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다. 

'이제 너도 다 컸으니까 부모님을 좀 이해해 드려야지.'

'부모님이 원래 그런 분이신 것 아직도 몰라?'

'네가 좀 참아.'

이런 말을 성인 자녀로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왜?' 란 질문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는 그것에 대한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내가 납득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너희 때문에 이제까지 이혼하지 않고 참고 산 거야.'

'너희같이 은혜도 모르는 애들을 키우느니 차라리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것이 훨씬 낫겠다.'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집안에 각종 고지서를 해결하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부모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으로 고통을 같이 나누고 있는 (잘못된 재정 문제를 위해 노력하는 한 편) 그럼에도 한편으론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 또한 하는 자신은 왜 이런 말들을 들으며 그들 곁에서 붙어있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고 이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인가?


나도 언젠가는 부모의 기쁨이자 희망, 사랑이었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언제였던 그날까지는 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다 부부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어리다면 어린 자녀였던 내가 부부의 사이에 끼여 버리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난 여전히 그들의 사랑하는 자녀가 맞지만 또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인질이 되기도 했다. 서로의 입장을 끊임없이 어린 자녀에게 털어놓았고 서로의 편을 들어주길 기대했다. 그러다 그 누구의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한 나는 때대로 욕을 들어먹었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결국 그들에게 있어 감정의 쓰레기통과 다를 바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내 감정은 그들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었고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부모를 비난하고 탓하며 우울해했다. 


어린 자녀이든, 성인 자녀이든 자녀들에게 부모 자신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며 자신들의 울분, 불안을 비워내는 쓰레기통 대신으로 쓰면 안 된다. 하지만 대부분 문제의 부모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의 찌꺼기들을 자녀들에게 배출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속상한 마음을 그래도 믿을만한, 혹은 만만한 자녀에게 털어놓는 것이 남에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자녀와 상의해야만 하는 이야기라면. 그러나 대부분 그때그때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대신 공유해 줄 사람을 자녀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당하는 자녀는 괴롭다.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녀를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부모는 왜 우리가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당장 해소시켜드릴 의무가 없다. 죄송하지만 그 감정은 그분들이 스스로 해결하셔야 할 문제이다. 부모의 삶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부모 자신들이 듯이 우리 역시 자신만의 인생 속에서 순간순간의 우리 기분과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일하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자신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우리의 것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떠안게 될 때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갑자기 우리를 침범하는 그 부정적이 감정보다는 적어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범위에는 부모도 해당된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성인자녀가 오히려 극단적으로 '착한 자녀'의 역할을 다른 형제자매들 중에 떠맡게 되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어릴 적 충족되지 못한 인정과 애정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올바르게 감정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말 그대로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는 쓰레기 통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 쏟아낸 부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린다. 우리 자녀들 스스로 느끼기에 부모의 감정을 해소시켜드려서 후련한가?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해소되지 않은 부정적 감정 때문에 괴로운가? 만일 괴롭다면 더 이상 감정의 쓰레기통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 자신 말고 가족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감정 노동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자녀 자신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 불효는 아니다. 인간은 어찌 되었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것에 역행함으로써 불행해지는 것 역시 인간뿐이다.


"부모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지쳐 나가껄어지지 말고, 당신의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라."  <그레이스 리보, 바버라 케인/나이 든 부모와는 왜 사사건건 부딪힐까?>


차라리 부모님께 좋은 상담 전문가를 소개해 드리자. 그것이 서로에게 훨씬 이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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