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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jebell Oct 21. 2022

 내 안에 죄책감

죄책감에 지지 마세요!

부모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게 될 때 가장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바로 '죄책감'이다. 나 혼자 살자고 이래도 되는지 싶은 마음이 들고 수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음에도 차마 떨쳐내지 못한 '죄책감'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게 만든다. 나도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한편으론 속 시원하고 드디어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한 감정이다. 죄책감은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스스로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신중한 결정임에도, 이제 가까스로 정신 차리고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 안에 죄책감은 자신의 마음을 콕콕 쑤셔댄다. 그들은 여전히 혈연관계를 들먹이며 낳아준 은혜와 키워준 수고로움을 배신했다며 그들의 자녀를 비난한다. 이 공격이 잘 먹히는 이유가 어릴 때부터 자녀는 이미 이런 말들로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그 말들로부터 벗어나기란 어렵다. 사실 그 말도 일부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기까지 하다.



죄책감으로 고민하던 한 내담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부모한테 세뇌당한 거나 다름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가 항상 좋아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다카하시 리에/상처 주는 엄마와 죄책감 없이 헤어지는 법>



건강한 가족 관계라고 해서 완전한 가족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갈등과 다툼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냐에 따라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부모라면 적당한 나이인 성인 자녀의 독립을 절대 막지 않는다. 오히려 지지해주고 자녀의 성장을 기뻐해 줄 것이다. 물론 섭섭한 감정은 서로에게 조금씩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과의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임을 가족 모두 알고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융(칼 구스타프 융)은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가 자기 몫의 삶을 살아냄으로써, 자녀가 자기 자신이 되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몫의 삶을 다 살아내는 부모의 자녀가 되는 행운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더해서 자녀는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운명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태어난 뒤부터는 모두 선택의 과정이다. 그 선택을 어렸을 때부터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주는 조력자가 바로 부모이다. 부모가 그 역할을 잘할수록 자녀는 스스로 좋은 선택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녀는 서서히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매끄러울 수만은 없다. 여러 가지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의 과정에서 상처받고 책임지는 것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다. 그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자녀를 너무 사랑한다는 핑계로 자녀가 스스로 장애물과 위험을 선택하고 감수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자녀가 어릴 때부터 책임지게 하고 결과에 비난만 하는 부모 역시 자신의 삶에서 비껴가 있는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자신이 살았어야 할 삶을 자녀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자녀 입장에서 이런 부모를 만나게 되면 인생에 있어 자신에게 좋은 선택을 하기 힘들게 된다. 자신이 꿈꿔왔던 그런 이상적인 부모상을 가지고 자신의 부모가 그것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자녀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 친구들의 부모를 만나게 되며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진실은 자녀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닌 더 큰 고통과 죄책감을 주게 되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믿어왔던 자신의 부모에 모습을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어떤 사실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과 멀어지고 싶어 진다. 그러나 그 멀어지고 싶어 하는 것이 이제까지 믿고 의지하던 부모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참았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하고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 콕콕 쑤셔대는 그것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다.


죄책감은 "저지른 잘못이나 죄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거나 자책하는 마음"(도리스 볼프)을 말한다. 정말 보모를 떠나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 죄일까? 부모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일까?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이다.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결과로써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많은 책임과 사랑과 의무와 권리가 주어져 있다. 사회적으로 묵인된 전통적인 사고방식으로 많은 복잡한 문제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사람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전통과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특별한 어떤 이유(죽음과 관계된 질병이나 기타 문제들)가 아닌 다음에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독립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뛰어넘어야만 하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죄책감도 그렇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다. 부모와 의 사이에 많은 실수들과 상처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속에 죄책감을 일으켜 자녀의 독립을 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결코 아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로 설 수 있는 독립은 자녀가 해내야 하는 과제와도 같다.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 듯 부모 역시 자신의 만족되지 않는 부분을 자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녀를 낳고 키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고생과 고결한 희생을 죄책감을 일으키는 싸구려 감정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리고 부모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어떤 시도도 해서는 안 되고 자녀는 그것에 굴복해서도 안 된다. 자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축하받아야 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죄책감도 동반하지 않는다. 자녀는 죄책감으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굳건해져야 한다.


"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첫 번째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 선택으로 누군가와의 관계가 변한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길 바란다. 누구의 판단이 가장 두려운가? 그 사람들이 실망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이 나를 응원하지 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줄리 리 스콧-헤임스/어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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