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게 드리운 밤이었다.
숲 속에 사는 새들도 잠자리에 든지 이미 오래되었다.
청솔모가 파득 파득 나무를 타는 소리만 어둠을 채웠을 뿐이다.
전쟁과 같은 어제가 우리곁을 떠났다.
문이 열린 곳을 멍하니 바라보는 영숙이는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가야 해요. "
영숙이와 함께 온 사람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아직 여름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다.
가을이 다가온 것 같은데... 어제 오후는 약간 무더웠다.
그러나 짧은 소매가 있는 옷을 입기에는
아침 기운이 쌀쌀했다.
중학교 2학년 영숙이.
그는 민소매를 입소 있었고, 허옇게 드러난 팔은 시뻘건 멍으로 채워져 있었다.
"저 가야 해요."라고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른 의미가 섞여 있었다.
"아니! 팔에 있는 이 멍자국은 뭐야...왜....어떻게...."
더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팔에 남겨진 멍자국보다
영숙이의 마음 깊이 자리잡은 시퍼런 멍의 크기를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숙이는 이런 멍은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고 싶다고 하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영숙이에게서
우리는 많은 의미를 들을 수 있었다.
"영숙이... 영숙이라고 했나요? 영숙아!"
이제 비로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낯선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영숙이와는 이렇게 첫번째 대면이 이루어졌다.
더 이상의 대화는 오고가지 않았다.
얼마나 거센 폭풍우를 견뎌내야 했을까?
중학교 2학년.
폭풍우를 잠시 피할 수 있는 시공간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 또한 불안한 동거처럼 영숙이에게는 느껴졌으리라.
이 땅에 태어나서 15년 만에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옮겨졌으니.
이렇게..... 이렇게.. 하루는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함께 어둠은 다가왔다.
얼마나 많이 뒤척였을까?
다들 잠이 들었는데... 영숙이에게 이 밤.
지난 15년간 숱하게 만난 밤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아침 같았다.
창문너머 보이는 별들은 도회지에서 만날 수 없었던 생명이었다.
"별... 별....."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꿈 나라로 들어갔다.
아주 깊게.......다시.. 결코 다시 만날 수 없는 어제를 떠나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