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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사랑은 하는 것? 받는 것? 주는 것?

사랑이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물어야 할 주요한 개념이다.


모두 사랑받고 싶어하는데

정작 받고 싶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사랑한다."라고 하지만

무슨 의미로 고백하는 것일까?


"사랑한다."고 고백했더니

"흥 말뿐!"이라고 되돌아왔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보냈더니

"왜 쓸데없이 돈을 써!"라는 말로

핀잔을 받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손편지를 써서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작은 선물과 함께 보냈더니

"나는 너를 원해. 이것도 몰라?"하며

성을 내곤 아직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흔한 말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그러한가?

그렇다면 

부모의 자식사랑은 무의미한가?

위에서 주는 내리사랑의 성격

대체로 일방적이다.


신의 인간을 향한 사랑

또한 절대적이고 일방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랑도

쓸모없는 것인가?


그러나 인간이 노래하고 칭송하다 못해

영원히 기억하는 사랑은

바로 이와같은 성격의 사랑이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사랑은

받는 사람들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며

알아 차리지도 못한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가령 부모가 우리 곁을 떠나면

그제서야 안타깝게 생각하며

사랑을 받은 당시 

깨닫지 못하거나 

보답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괴로워 한다.


그래도 사랑이

받는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가?


사랑은 일시적인가? 영속적인가?

일시적인 것은 사랑인가? 욕망인가?

혹 호기심에 따른 것은 아닌가?


현대인은 참을성이 적다고 한다.

사랑의 측면에서도

적용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영속적이고 항구적인 사랑보다

찰나적인 사랑에

울고 웃는 일에

익숙해져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불안에 하는 것은 아닌가?


결국

사랑을 희구하고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이란 이름 때문에

울고 웃으면서

정작 사랑에 대해 무지한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파라켈수스

(Paracelsus, 1493~1541)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에리히 프롬

(Erich Pinchas Fromm, 1900~1980) 말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각하면서도

 삶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타인을 욕망하고 원하고

 집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래.

우리는

이 땅에서 호흡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랑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사랑을 알기나 할까?

사랑을 할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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