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곳을 잃어버렸어요 (10)

믿을 수 없는 세상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빠는 약속했다.

나와 약속하기 전에 상담선생님과 문서에 싸인까지 했다.

무엇인가 예감하셨는지 상담선생님은 전화번호와 약간의 용돈을 손에 쥐어주셨다.


아빠는 나와의 약속도, 본인이 한 공적인 다짐도 송두리째 공중분해시켰다.


나는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돌아오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아빠에게 맞아 팔이 부러졌을 때보다 더 큰 신뢰의 둑이 붕괴되어 버렸다.


나는 싱크홀 위를 걷고 있다.

바닥이 깊게 꺼져서 발이 닿지않는 땅위를 곡예하듯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언제 저 심연 속으로 빠져들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고.


돌아왔을 때 상담선생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수야!왜 벌써? 아직 이틀 남았는데..."

나에게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가 나에게 거짓말을..

집엔 가기 싫었어도 그래도 아빠를 믿고 싶은 마음이 실오라기 만큼 있었는데...

이젠 이것도 없어졌어요.""


한참동안 울었나보다.


나는 다시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형아 어떻게 왔어 재미있었어?"

"일수야 무슨 일이 있어 여행을 간다고 하면서."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하루밤을 자고 나니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그냥 왔어. 나 잘했지?"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겉으로는 그리 말했지만, 나는 앞으로 어찌해야 할 지를 ....


더이상 믿음이 사라진 세상.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지.

이제 12년을 살아왔을 뿐인데.


그후로 여러 날이 지났다.

흥분한 아빠의 전화가 수없이 왔다고 한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일수야 나와 함께 할 시간 줄 수 있겠니?

원장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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