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목발을 짚고 가방을 들고
3~40분 이상 걸어가는 길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효창운동장을 지나서
청파동 언덕길로 올라가게 되면
성모 마리아 석상이 세워진
김남조 시인의 고즈넉한 주택과
거대한 성곽과 같은 저택
(조중훈:당시 한진그룹회장)이
늘 그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면
중학교 후문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새 목발짚고 다니는 일에
달인(達人)이 되어
수많은 계단을 날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우리 반에 목발을 짚은
네명의 친구를 불렀다.
운동장으로 내려갔더니
대형버스 서너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길을 나섰다.
도착한 곳은 남산 꼭대기에 있는
어린이 회관이었다.
아하! 이것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왔구나.
뒤에 조사해보니
5월 5일 어린이날의 하루 전날
5월 4일이 소아마비 어린이날이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아직도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목발에서 휠체어로 옮겨서
이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사춘기(思春期)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근본적인 내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이
내 안에 가득 채워졌다.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할까?"
스무살의 풋풋한 양희은의 노래는
바로 나를 노래한 것이었다.
1971년 산레모 가요제에서
이탈리아 가수 루치오 달라가 불러
입상한 노래를 조용호 작사로 만든
시각장애인 이용복의 노래
"바람이 휘몰던 어느날 밤. 그 어느날 밤에
뒹구는 낙엽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이 가사들은
아.
나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닌가?
빨리 하늘로 가야하는 것은 아닌가?
목발에 의지하여 허리는 구부정하고
두다리는 휘어져 올곧지 않으며
내눈은 아주 가끔 하늘을 응시할 뿐
길바닥에 파인 홈은 없는지
혹 돌이나 질퍽한 부분이
나의 걸음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주시하고 있는
나의 시선은 항상 땅에 쳐박혀 있었다.